먹고 사는 문제 앞에서는 남미의 강국 아르헨티나도 오일 달러로 벼락부자가 된 베네수엘라에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12일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지난주 연대 채무증서를 발행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아르헨티나가 발행한 국채를 베네수엘라 정부가 사들이는 것이다.
아르헨티나는 이미 베네수엘라로부터 지난 1년간 32억달러(3조원)를 조달했고, 올해 말까지 20억달러(1조8500억원)를 추가로 들여올 예정이다. 베네수엘라는 현재 아르헨티나의 유일한 돈 줄이다.
브라질과 함께 한 때 남미 경제를 양분했던 아르헨티나로서는 격세지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90년대 중반까지 경제강국으로 군림해 왔지만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고, 2001년에는 채무불이행(디폴트)까지 선언하며 끝없이 추락해 왔다. 이로 인해 국제자본시장에서 ‘왕따 신세’를 면치 못했다. 고이자의 국채를 발행해도 리스크가 크다는 이유로 투자자들로부터 외면 받기 일쑤였다.
반면 베네수엘라는 배럴당 70달러가 넘는 고유가 덕분에 넘쳐흐르는 달러를 주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차베스 대통령은 오일달러를 무기로 중남미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해 반미 전선을 구축하겠다는 야망을 불태우고 있다. 이런 이유로 아르헨티나의 국제금융 전문가들은 “연대채무증서 발행이 장기적으로 지역의 정치 불안을 조장해 아르헨티나에게는 득보다 실이 크다”고 진단하고 있다.
하지만 당장 내년에 돌아올 10억달러(약 9300억원)의 채무를 갚을 방법을 찾을 수 없었던 아르헨티나 정부로서는 베네수엘라의 제안을 뿌리칠 수 없었다.
‘정치적 족쇄’라는 것을 알지만 당장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서는 ‘독배’를 마실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르헨티나의 현실이다.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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