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문열씨의 서재 책상 옆에는 검도용 죽도 한 자루가 놓여 있다. 의아해서 용도를 물어 본 적이 있다. 그가 사람들과 한창 싸울 무렵, 한 강연회에서 '왜 자꾸 논쟁을 피하냐'는 질문을 받고 예를 든 것이 검도였다고 한다.
“검도 5단과 검도 1단이 싸움을 하면, 5단이 한 칼에 1단을 벨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5단도 팔 하나는 내주어야 상대를 죽일 수 있지, 그렇지 않고는 못 죽인다는 얘기였지요. 그런데 한 명이 얘기를 잘못 들었는지, 혹은 내가 검도의 고수라고 생각했는지 저걸 보내 주었어요. 버릴 수도 없어서 그냥 두고 보죠.”
지나치게 비장한 느낌도 들지만, 그 비유는 적실함과 지혜로움에서 경구처럼 와 닿았다. 사람들과 한창 싸울 무렵이라고 하니 참여정부가 들어선 직후가 아닌가 싶다. 죽도를 공짜로 얻게 된 걸 보면, 청중의 공감도 컸던 모양이다. 어쨌든 우리는 국내외적으로 싸움과 죽음의 극단적 비유가 별 저항 없이 들리는 험한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 무력은 약해도 무섭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사회가 또 한 차례 홍역을 치르고 있다. 북한은 남한과 미국 일본 등의 경고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무모한 행동을 저질렀다. 기지 주변의 황폐한 풍경을 뒤로 하고 불꽃과 함께 솟아오르는 TV 속 미사일 발사 장면은 공포스러웠다. 북한은 남한 정부를 궁지에 몰리게 하고, 모든 선의와 도움을 헛되게 만들고 있다. 국제 사회도 목소리 높이 북한을 비난하고 있다.
북한은 미사일 발사가 자위적 군사훈련이며 이를 제재할 경우 더 강력한 대응을 하겠다고 강경한 자세로 맞서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6자 회담을 존중하며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풀겠다고 밝혔다. 국제적 고립을 불사하며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가장 큰 이유는, 예상대로 미국과의 직접 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벼랑 끝 전술이었다.
보수 언론과 정치인들은 대북지원의 전면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미국 대통령은 미사일 발사를 심각한 도발행위로 규정하면서도, 외교적 노력을 통해 해결해 나가기로 견해를 같이 했다. 한국과 함께 북한 미사일의 위협을 직접 느끼고 있을 일본도 비교적 절제된 대응을 하고 있다. 다행한 일이다. 지도자들은 냉정과 분별력을 잃지 않고 북한의 군사적 모험이나 위험한 도발을 무력화 시켜야 한다.
더 나아가 긴 흐름에서 남북관계에 대한 직시를 당부하고 싶다. 우리의 남북분단은 일제 강점과 세계적 냉전 체제의 불행한 유산이다. 다행히 그 속에서 우리는 역사의 승자가 되었고, 북한은 패자가 되어 있다.
우리는 많은 희생을 치르고 장애를 극복하며 민주주의와 국부를 이룩했다. 열린 체제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닫힌 체제인 북한은 그렇지 못했다. 그들은 체제적ㆍ경제적으로 쫓기고 있다. 패자는 비참하다. 그들은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고 고립돼 있다.
북한의 당면과제는 개방과 민주로 단순하다. 하지만 폐쇄사회에서 기득권을 누려온 지도층은 자신의 지위를 잃기 싫어한다. 주민만 불행하다. 그 모순과 부조리가 누적돼 온 것이 지금의 북한이다. 모순은 또 다른 모순을 부른다. 1970년대 경제에서 남한에게 밀리자 북한은 핵 개발에 나섰다. 다시 미국의 인권외교와 금융제재로 궁지에 몰리게 된 북한은 미국 독립기념일에 맞춰 미사일을 무더기로 발사하기에 이른다.
● 북미 양자 대화 나서야
망치를 든 사람은 무엇이든 두드릴 것을 찾는다. 이문열씨의 비유대로 싸움이 시작되면 검도 1단도 무섭다. 우리는 무력시위가 두렵다. 북한을 계속 누르면 한계점에서 용수철처럼 솟아오르고, 파편이 먼저 우리에게 날아올 수 있다. 역사적 승자로서 우리와 미국은 적극성과 아량을 보여야 한다. 미국이 북한과 대화를 시작한다고 그것을 굴복이라고 여길 이는 없다.
박래부 수석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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