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 월리스(Terry Wallis)와 테리 시아보(Terry Schiavo). 이 두 미국인은 이름이 같은 식물인간이었다. 월리스는 '의학적으로 소생'했고, 시아보는 '사법적으로 살해'됐다. 남자와 여자는 곁가지다. 월리스 스토리의 배경은 가톨릭이 우세한 북동부 펜실베이니아주이며, 시아보 논쟁은 기독교가 강한 남동부 아칸소주에서 시작했다.
의학과 법학이라는 인식의 근거에도 관심이 간다. 테리는 애칭이다. 남자는 Terence, 여자는 Theresa가 본명이다. 1979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테레사 수녀의 상징은 사랑이다.
■1964년생 월리스는 스무살이던 해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쳤고, 뇌신경이 끊겨 식물인간이 됐다. 84년 7월 13일 금요일에 오감(五感)이 닫힌 그는 2003년 6월 13일의 금요일 "엄마(Mom)"라고 말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19년의 세월은 접었지만 어설픈 단어를 연결하며, 사고 전의 기억을 끄집어 냈다. 그를 돌봐온 의료진은 의학전문지 올해 7월호에서 "끊어졌던 뇌신경이 기적적으로 소생돼 연결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의학계는 '복권당첨 같은 기적'이라고 진단했으나 그를 무작정 사랑했던 가족들은 '기적'에 동의하지 않았다.
■1963년생 시아보는 84년 결혼한 뒤 거식증을 치료하다 90년에 쓰러졌다. 체내 칼륨 부족으로 심장마비가 초래됐고 뇌세포 손상으로 이어졌다. 8년 후 그의 남편은 "평소 아내가 인위적인 방법으로는 살기 싫다고 말했다"며 안락사를 요구했으나, 그의 부모는 "병상의 딸이 나는 살고 싶다(I want to live)는 의미로 자주 'Ahhh, Waaa'라고 절규했다"며 반대했다.
플로리다주 법원은 남편의 요구를 수용했고, 지난해 3월 31일 그는 안락사 당했다. 그 동안 남편과 부모는 각종 험담과 스캔들을 들춰내며 7년동안 길고긴 소송을 벌였다.
■월리스의 소생을 보면서 시아보의 기억이 떠올랐다. '손상된 뇌세포는 되살릴 수 없으나 끊긴 뇌신경은 연결될 수 있다'는 의학적 소견은 이해할 수 있다. 관심은 환자인 월리스나 시아보보다 그 '주변'에 쏠린다.
죽은 자의 부음이 산 자의 몫이라는 생각과 함께 식물인간에 대한 관심은 가족의 몫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한 쪽에선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다른 한 쪽에선 '기적'이 현실화했다. 안락사는 희랍어 eu(well)와 thanatos(death)의 합성어다. 같고도 다른 두 경우의 '테리 사건'을 보면서 사랑의 힘을 생각하게 된다.
정병진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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