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중간에 자리잡은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얀. 수도 카불에서 북서쪽으로 129㎞ 떨어진 해발 2,500m의 이 도시는 2~5세기 불교 성지이자 문화와 상업의 중심지였다. 400년께 중국의 고승 법현(法顯)이, 630년 현장(玄奬)이, 727년에는 신라의 혜초(慧超)가 이 곳을 찾았다.
수많은 불상들이 새겨진 바미얀 절벽은 보는 이들의 경탄을 자아냈다. 불상이 들어선 석굴은 순례자들의 사원이자 안식처였다. 특히 절벽 왼쪽 끝과 중앙에 새겨진 두 개의 거대한 석불은 각각 높이 55m, 38m로 웅장함을 자랑했다.
그러나 1,500년 된 인류의 문화유산은 2001년 8월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원리주의자인 탈레반 정권에 의해 무참히 파괴됐다. 2개의 거대 불상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세계 불교계는 깊은 탄식에 빠졌다.
5년 뒤인 2006년 스위스 취리히 국립과학기술원(ETH·한국과학기술원과 같은 이공계 중심 연구대학)의 아민 그루엔 교수의 컴퓨터 안에는 높이 55m의 거대 석불이 1970년대 모습 그대로 복원돼 있다.
3차원 모델인 만큼 지금이라도 이대로 건설하기만 하면 불상은 고스란히 되살아날 수 있다. 실제 그루엔 교수는 이를 토대로 200분의1 모형을 제작했고, 취리히 인근 부벤도프의 아프가니스탄박물관에서 5m 높이의 모형(10분의1 모형)을 제작하는 데에도 활용됐다.
이처럼 사라진 문화재를 감쪽같이 되살린 것은 바로 사진측량을 바탕으로 한 3차원 컴퓨터 모델링 기술이다. 그루엔 교수는“최소한 2장의 사진만 있다면 에베레스트 산이건 불상이건 무엇이든 3차원 입체 모델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작업과정은 이렇다. 먼저 석불에서 기준점이 될만한 점을 2개 실측해야 한다. 이후부터는 모두 사진을 이용한 컴퓨터 작업이다. 석불의 사진을 보고 사진을 찍은 카메라의 위치를 알아낸다. 각각의 사진의 픽셀과 초점을 조정한 뒤 비교할만한 점을 정해 겹치도록 만든다. 사진이 3장 이상이라면 계속 점들이 겹치도록 연결한다.
이렇게 사진을 겹치도록 만든 뒤 맨 처음 기준점과 비교하면 점들의 3차원 좌표가 정해진다. 이제 수많은 점들의 3차원 좌표를 추적해 입체모형을 만들 수 있다. 그루엔 교수는 “55m짜리 바미얀 석불은 3장의 사진에서 총 10만개 점들을 구성해 오차범위 2㎝ 이내의 3차원 모델을 재현했다”고 말했다.
특히 다행스럽게도 고해상도의 석불 사진 덕분에 작업이 원활했다. 그루엔 교수는 처음 관광객 등이 찍은 석불 사진을 인터넷에서 구해 작업했지만 해상도가 떨어져 복원이 불완전했다. 그러다 지도제작 전문가인 호주의 R.코스트카 교수가 70년 지도를 만들기 위해 이 곳을 지나며 찍은 사진을 입수한 뒤 완벽에 가까운 복원이 가능해졌다.
그루엔 교수는 “38m짜리 석불은 아직도 복원작업이 진행 중인데 좋은 사진이 없다는 게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이 석불은 바로 앞이 내리막이라 괜찮은 사진을 찍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는 “누구든 좋은 사진이 있으면 꼭 연락해 달라”는 부탁을 잊지 않았다.
그루엔 교수의 이번 복원작업은 자발적인 봉사차원에서 이뤄졌다. 바미얀 석불이 파괴된 후 세계 불교계도 복원기금 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아직 바미얀은 빈 석굴 그대로다. 아프간 정부가 방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완의 사례도 있다. 그루엔 교수는 터키의 안탈리아 박물관에 소장된 2세기 로마시대 ‘지친 헤라클레스(The Weary Herakles)’ 조각상의 잃어버린 상반신을 찾기 위한 작업에 참여했다. 터키에는 조각상의 허리 아래만 있고, 위쪽은 미국 보스톤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터키 정부가 조각상을 온전히 합치기 위해 노력했지만 보스톤 미술관측은 “터키의 조각상은 헤라클레스상이 아니다”며 협조를 거부했다. 그루엔 교수는 양측 조각상을 스캔해 3차원 모델이 일치한다는 증거를 보이고자 했지만 보스톤 미술관은 스캔 작업마저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
현대 과학기술은 사라진 문화유적을 생생히 복원하고 있다. 그러나 문화유적 보존에는 과학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정치적 종교적 갈등을 완화하는 우호협력과 인류애가 그것이다.
취리히=김희원기자 hee@hk.co.kr
■ 3차원 컴퓨터 모델링 기술
사진측량(photogrammetry)을 이용한 3차원 컴퓨터 모델링 기술은 문화재 복원뿐 아니라 3차원 지도제작, 애니메이션 영화제작 등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검색포털 구글이 제공하는 3차원 지도 서비스는 시가지를 찍은 항공사진을 이용해 3차원 입체 모형을 만든다. 실측점을 지구위성측정(GPS) 시스템으로 잡고, 일반 카메라 사진 대신 위성 또는 항공사진을 이용한다는 점이 바미얀 석불의 경우와 다를 뿐이다. 그루엔 교수는 에베레스트산을 찍은 해상도 1m짜리 항공사진으로 입체모델을 만들어 ‘디스커버리 채널’에 소개되기도 했다.
영화 ‘반지의 제왕’의 골룸도 같은 기술로 만들어졌다. 사람에게 여러 형광점들을 마크하고 연기를 하도록 해서 여러 대의 카메라로 촬영한 뒤 형광점들을 입체화한 것이다. 물론 입체 영상 위에 표면(텍스처)을 입히는 컴퓨터 그래픽이 큰 몫을 했다.
다만 컴퓨터는 2차원 사진영상을 입체적으로 식별하는 데에 한계가 있어 3차원 모델링에는 어느 정도 수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 기술적 한계다.
김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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