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독일 좌ㆍ우 대연정이 의료보험 개혁 때문에 9개월 만에 ‘파경’ 위기를 맞았다.
집권 기독민주연합(CDU)_기독사회연합(CSU)과 연정 파트너인 사민당(SPD)의 지도부는 최근 구멍난 의료보험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내년부터 노사 부담금을 각각 0.5% 포인트 인상하고 2008년부터 국가예산 중 15억유로를 보험재정에 투입하기로 합의했다. 메르켈 총리는 여름 휴가철에 들어가는 8일 이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19세기 후반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 이후 123년 만에 처음으로 의료보험제도가 대변화를 겪게 됐다.
하지만 보험료 인상안을 놓고 사민당 일각에서 “연정의 문제점이 하나 있는데 앙겔라 메르켈이 바로 그것”이라며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렸다. 사민당의 요하네스 카르스 의원은 “썩은 생선은 언제나 머리부터 악취가 나기 시작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사민당 출신의 프란츠 뮌테퍼링 노동부 장관은 “총리가 용기가 부족하다”고 비난했다. 역시 사민당 출신의 페르 스타인브루에크 재무장관은 “이번 개혁안에 따라 2013년까지 90억유로가 필요하다”며 세금 인상을 주장했다. 의료보험 개혁이 세금 인상 없이 개인 부담을 늘리는 ‘우파적인 개혁’으로 결정된 데 대한 항의 표시였다.
이에 대해 CDU_CSU 소속 볼프강 보스바흐 의원은 “연정을 하면서 총리를 비판해서는 안 된다”며 “사민당은 연정을 계속할 지 여부를 먼저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메르켈 총리 측근도 “총리가 역할을 아주 훌륭히 수행하고 있다”며 “총리가 그런 말에 대응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야당인 자유민주당(FDP) 귀도 베스터벨레 당수는 “대연정이 파경에 이를 것이라는 징조”라며 “조기 총선이 실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재계도 보험료를 인상함에 따라 내수가 줄어들어 경기가 침체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혜택을 자랑하는 독일 의료보험은 저출산ㆍ고령화가 심각해지면서 재정적자가 해가 갈수록 불어나고 있다. 내년도 예상 적자가 무려 70억유로에 달한다. 이에 따라 사민당은 당초 세금을 올려 적자를 해소하자고 제안했지만, 메르켈 총리는 세금 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의료 서비스를 대부분 무료로 받는다는 점에는 변화가 없지만 보험료를 절반씩 나눠 내도록 돼 있는 기업과 개인의 부담은 늘어날 수 밖에 없다.
그 동안 자국에서 치러졌던 월드컵 분위기로 잠잠했던 여론의 반발이 점차 거세질 것으로 보여 개혁안 논란이 쉽게 사그라 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권대익 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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