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축구. 이번 독일월드컵에서 나타난 세계 축구의 새로운 트렌드이다.
결승전을 남겨 놓은 9일(이하 한국시간)까지 치른 63경기에서 터진 골은 모두 145개. 경기 당 2.30개 꼴이다. 2002 한일월드컵 당시의 2.52골과 비교하면 크게 떨어진 수치다. 많은 골이 터지지 않은 가장 주된 원인은 각국이 ‘지지않는 축구’를 위해 수비와 미드필드를 강화하고 안정적인 경기운영을 한 것에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 테크니컬스터디그룹(TSG)은 이번 대회를 통해 나타난 각국의 전술 포메이션의 공통점으로 포백 수비,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와 원 스트라이커 배치 등을 들었다. 공격의 비중을 줄이는 대신 미드필드와 수비진을 강화하는데 초점을 맞춘 전술 구사다.
TSG는 평균 득점이 줄어든 이유 역시 포백 라인 위에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배치하는 시스템의 유행을 꼽았다. 포백 수비는 현대축구의 대세다. 독일월드컵 본선 진출 32강 중 멕시코, 코스타리카, 일본, 호주 등을 제외한 28개국이 선택했다.
포백 수비는 좌우 측면 수비수들의 오버래핑을 통한 적극적인 공격가담을 기본으로 한다. 사실상 수비수는 중앙 수비 두 명 뿐이다. 그래서 좌우 측면수비수들의 공격 가담할 때 수비 뒤쪽의 빈 공간을 메워줄 선수가 필요하다. 이 역할을 하는 것이 수비형 미드필더다.
독일월드컵에 나선 대부분의 팀들은 수비강화를 위해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기용했다. 프랑스와 포르투갈이 사용한 4-2-3-1, 이탈리아의 4-3-2-1 등이 모두 수비형 미드필더를 두 명 배치한 전형적인 포메이션이다. 4-3-3을 주 포메이션으로 한 한국도 수비형 미드필더 두 명과 공격형 미드필더 한 명을 역삼각형으로 배치했다. 이렇게 문단속을 단단히 하니 상대방이 파고들 틈새가 줄어든 것은 당연하다.
수비형 미드필더의 중요성은 이번 대회 들어 더욱 부각됐다. 수비형 미드필더의 기본 임무 외에 공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TSG는 특히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플레이메이커 역할까지 수행한 가나의 마이클 에시엔(첼시), 이탈리아의 안드레아 피를로(AC 밀란) 등이 ‘수비형 미드필더의 새로운 전형’으로 평가 받았다.
최전방 공격수 한 명을 배치하는 것도 일반화됐다. 포백을 사용하는 팀들은 대부분 한 명의 스트라이커를 최전방에 배치하고 윙플레이어와 처진 스트라이커(공격형 미드필더) 등을 공격 2선에 배치했다. 투 스트라이커를 내세운 팀은 미로슬라프 클로제(브레멘)와 루카스 포돌스키(퀼른)를 내세워 전형적인 4-4-2 포메이션을 구사한 독일 정도.
공격수 한 명이 2선으로 내려 배치되면서 미드필드에서의 공간 다툼과 압박은 더욱 치열해졌다. 이렇게 격렬해진 중원싸움이 골 가뭄의 근본 원인이었다. 미드필더 5명에 좌우 측면수비수까지 가세, 중원에서 팽팽한 힘 겨루기를 하다 보니 결정적인 찬스도 나지 않고 자연스레 골도 줄어들었다. 세계적인 강호들이 맞붙는 ‘소문난 잔치’에 이렇다 할 ‘먹을 것’이 없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김정민기자 goavs@hk.co.kr
■ 다음엔 잘하겠지…
매 대회마다 세계 축구팬들과 전문가들의 허를 찌른 이변이 독일월드컵에서는 자취를 감췄다. 4년 전 세계축구의 질서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던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제3세계 축구’는 반란의 깃발조차 세우지 못하고 무참하게 몰락했다.
한국, 일본,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4개국이 출전한 아시아축구는 단 한 팀도 조별리그의 벽을 넘지 못했고 그나마 승리의 맛을 본 것은 토고를 꺾은 한국뿐이었다. 나머지 3팀은 각 조 최하위를 차지하며 ‘머릿수 채우기’에 동원된 들러리로 전락했다.
지난 66년 잉글랜드월드컵에서 북한이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아시아축구는 지난 94년 사우디의 16강 진출, 2002년 한국의 4강, 일본의 16강 진출로 파워를 뽐냈다. 하지만 세계무대와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후진적인 아시아 프로리그의 현주소가 이번 대회에 무참히 드러났다.
아프리카 축구 역시 아쉬움을 남겼다. 조별리그에서 FIFA랭킹 2위인 체코를 꺾은 가나가 16강에 진출한 것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특히 처녀 출전한 코트디부아르, 토고, 앙골라 등은 세계 축구의 높은 벽을 확인했고 아사모아 기안, 마이클 에시엔, 설리 문타리 등 주축선수들이 유럽의 명문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가나도 경험부족과 조직력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16강에서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다.
한준규기자 manbok@hk.co.kr
■ 말 말 말...
▲“몸 상태를 따지려는 뜻은 없었어. 널 좋아하는 걸 알잖아”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이 간판골잡이 호나우두의 ‘과체중’ 논란을 지적한 뒤, 호나우두가 토라지자 급하게 보낸 긴급 팩스에서.
▲“귀가 먹었나? 말 안 한다고 했잖아”
조별리그 1차전 한국과의 경기를 앞두고 전격 사퇴했다 다시 복귀한 토고의 오토 피스터 감독이 한 기자의 “사퇴했다가 왜 돌아왔느냐”는 물음에 ‘노코멘트’를 선언하면서.
▲“맥주회사가 주는 것이기 때문에 받지 못한다”
사우디아라비아 대표팀 관계자가 자국 대표선수들은 술을 금지하는 이슬람율법에 따라 독일월드컵 ‘버드와이저 최우수선수상(man of match)’을 받을 수 없다며.
▲“특별한 작전이 없다면 행운을 빌어야 한다. 그게 바로 내 작전이다”
거스 히딩크 호주 대표팀 감독이 일본과의 경기에서 어떻게 막판 역전극을 이끌어냈는지에 대해 설명하면서.
▲“기자들은 빗나간 것만 얘기한다”
브라질의 ‘축구황제’ 펠레가 자신이 찬사를 보내는 팀은 오히려 저주가 된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분통을 터트리면서.
▲“주심한테 차라리 노란 유니폼을 입히지 그랬나?”
라토미르 두이코비치 가나 감독이 브라질과의 16강 전에서 퇴장 1호의 불명예를 안은 뒤 심판이 브라질의 편을 들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하면서.
김종한기자 tellme@hk.co.kr
■ '노장투혼' 빛났다
이번 월드컵에선 주요경기 마다 ‘노장들의 투혼’이란 말이 빠지지 않았다. 강팀의 선발라인업은 4년 전 한일 월드컵 때와 잘 구별이 되지 않았다.
결승에 오른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대표적 사례다. 대표팀 23명의 평균 연령은 프랑스가 28.4세, 이탈리아가 28.3세다. 주전들의 평균 연령은 30세를 훌쩍 넘었다.
35세의 파비앵 바르테즈가 주전 골키퍼로 뛴 프랑스는 지네딘 지단, 릴리앙 튀랑(이상 34세) 클로드 마켈렐레(33) 파트리크 비에라(30) 등이 모두 30대다. 이탈리아 역시 마르코 마테라치, 필리포 인차기(이상 33세) 알레산드로 델피에로(32) 프란체스코 토티, 마우로 카모라네시(이상 30세) 등이 서른 줄에 들어섰거나 넘었다.
반면 젊은 피를 대폭 수혈한 나라들의 성적은 기대에 못 미쳤다. 스페인과 잉글랜드(이상 평균 연령 25.5세), 아르헨티나(평균 연령 26.2세)는 16강이나 8강에서 주저 앉았다. 평균 나이 24.9세로 가장 젊은 팀 스위스는 조별리그를 1위로 통과했지만 우크라이나와의 16강 승부차기에서 한 골도 못 넣는 등 경험 부족을 절감했다.
노장의 활약을 뒤집어 보면 세계 축구가 세대교체에 실패했다는 뜻이 된다. ‘늙은 월드컵’이란 비아냥도 나왔다. 베테랑들의 무더기 대표팀 은퇴가 예상되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뿐만 아니라, 대회 최고령팀인 체코(평균 28.7세)와 브라질(평균 28.5세) 등 강팀들이 자국 내에서 강력한 물갈이 요구를 받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일환기자 kevin@hk.co.kr
■ 기록으로 본 2006독일 월드컵
1. 스웨덴 마르쿠스 알베크 = 월드컵 통산 2,000골 주인공
2. 브라질 호나우두 = 역대 월드컵 최다골(15골) 기록
3. 스위스 = 역대 월드컵 승부차기서 단 한 골도 못 넣은 팀
4. 포르투갈 히카르두 골키퍼 = 역대 월드컵 승부차기에서 3골 방어
5. 독일 = 월드컵 승부차기 4전 전승
6. 아르헨티나 리오넬 메시 = 역대 월드컵 5번째 최연소(18세 357일) 골
7. 이란 야히아 골모하마디 = 역대 월드컵 5번째 최고령(36세 84일) 골
8. 튀니지 알리 붐니젤 = 역대 월드컵 5번째 최고령(40세 71일) 출전
9. 토고 오토 피스터 감독 = 역대 월드컵 2번째 최고령(68세 211일) 감독
10. 프랑스 바르테즈 골키퍼 = 독일월드컵 4경기 등 통산 10경기 무실점
11. 포르투갈 루이스 펠리프 스콜라리 감독=역대 월드컵 11연승
12. 브라질 = 월드컵에서 대표팀 11연승
13. 이탈리아 잔루이지 부폰 = 월드컵 453분 무실점 방어, 현재 5번째 최장시간
14. 호라시오 엘리손도 = 월드컵 개막전에 이어 결승전 주심 맡은 첫 심판
15. 멕시코 베니토 아르춘디아 = 한 대회에서 5번 주심 맡은 첫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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