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소격동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정수진(37)씨가 6년 만에 개인전을 갖고 있다.
그의 작품은 꼭 수수께끼 같다. 얽히고 설킨 화면 구성이 난해해 관람객들은 당혹감을 느낄 수도 있다. 털이 덥수룩하게 자란 다리가 치마 밑으로 드러난 여자. 머리에서는 만화 속 한 장면처럼 모락모락 김이 난다. 주변에는 구겨진 종이조각들과 성냥개비, 우유 팩 등이 널려 있다.
다른 한 쪽에는 우유 팩보다 더 작은 나무가 있고, 도무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형상들도 캔버스를 채운다. 정수진씨의 짧고 명쾌한 대답. “주제요? 없어요. 그냥 그렸어요. 그저 형과 색에만 신경 썼을 뿐이에요.” 그냥 느낌이 오는 대로, 손이 가는 대로 그려냈단다. 해석은 관람객 몫이란다. 아예 작업을 시작할 때부터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따위는 없었단다. 그림 속에 언어적 의미가 들어 있어야 한다는 선입견을 과감히 깨주고 싶었던 것일까. 그야말로 추상 회화다.
이주현 아라리오 큐레이터는 “정씨는 회화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작가로, 의미는 없애고 이미지만 남기는 완전 추상 작업을 하고 있다”며 “이전 작업보다 구성이 안정됐고 느낌은 자유로워졌으며 여백이 많아졌다”고 평했다.
대상에 대한 세밀한 묘사와 현란한 색의 사용, 온갖 종류의 기법과 구성 형태, 색채 등이 오버랩 된 정씨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다. “이게 뭘까요?” 라며 놀리는 것 같기도 하다. 어릴 때부터 만화를 즐겨 그린 그는 지금도 캔버스에 종종 만화적인 드로잉을 그린다.
연필과 펜 선에 익숙했던 정씨가 처음 붓과 색을 써서 그림을 그릴 때는 낯설고 힘들었다. 그래서 형과 색에 집착하게 됐는지도 모른다. 세잔느와 고흐, 모네의 붓질을 연구하며 자기만의 색깔을 찾아갔다. 요즘에는 캔버스 대신 도자기에도 색과 선을 입혀본다.
“바나나, 상자, 바위 같은 게 무슨 뜻을 지니고 있을까요? 제 그림도 그처럼 보이는 것, 그게 다입니다. 그림을 본 후의 느낌이 그림의 의미를 대신할 겁니다. 그러니까 그림의 뜻은 더 이상 묻지 말아주세요.” 이 ‘묻지마 전시’는 다음달 6일까지 계속된다. (02)723-6190
조윤정기자 yjch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