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65)씨가 두 권의 두툼한 시집을 한꺼번에 냈다. ‘새벽강’과 ‘비단길’(시학 발행)이다. 불과 30개월쯤 전, 시집 ‘유목과 은둔’을 내면서 ‘생명운동에서 한 걸음 물러 앉아 문학에 힘을 쏟겠다’고 했던 약속을 그는, 적어도 양(量)적으로는 성실히 지킨 셈이다. 두 권의 시집에는 무려 198편의 시가 실려있다.
그의 시들은 하나같이 시각적으로 성글다. 시어가 적고, 행이 짧고, 연이 얇다.
“시 없이/ 어찌 사나// 새벽길/ 흰 달 보고// 시 없이/ 어찌 말하나// 뭍 위에 오른 배/ 그 절망 없이/ 어찌 견디나// 시 위에서만/ 동 터 오는// 예순다섯의/ 삶.// 아/ 거기/ 요행히도/ 강 하나 있어// 더 부러울 것 없네라.”(표제시 ‘새벽강’ 전문)
그렇게 ‘가난한’ 시로 그는 생명과 평화를, 그리고 그 가치들의 존재론적 미학이라 할 ‘흰 그늘’의 깊이를 이야기한다. 언뜻 시의 형식을 빌린 잠언의 행렬이라 해도 좋을 시들도 있다. 7일 기자 간담회에서 그는 “이번 시집 속에는 함량 미달의 시들이 아예 없지는 않을 것”이라며 웃었다.
그는 시의, 언어의, ‘자발적 가난’을 이야기했다. “과도한 소비 욕구와 풍요에의 욕심이 자연의 파괴와 약탈로 이어집니다. 그 같은 삶의 방식은 우리 삶의 말의 풍요에 기인한 것일지 모릅니다. 말의 절약이 삶의 절약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젊은 시인들의 시에 대해서도 말했다. “요즘 시들은 행갈이도 없고, 쉼표도 마침표도 없어요. 줄글이죠. 그 속의 세상은 무척 아름답습니다. 온갖 화려한 이미지가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가지요. 그것은 그것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생명문화가 절박한 시대에는 어떤지 모르겠어요. 동양 산수화의 준법처럼 공(空), 무(無), 허(虛)가 시의 텍스트 안으로 스며 틈과 여백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인의 말’에 그는 “그 ‘가난’이 ‘무’이고, ‘무의 실현’이 참된 ‘생명의 체현’”이라고 썼다.
말끝에 그는 “그런데 요즘 쓰고있는 시는 좀 다르다”고 말했다. “시인은 좀 사치스러워지더라도 꽃에 좀 더 다가서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내 시를 보면 너무 메말라 미라처럼 보이기도 하거든요.”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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