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축구의 개척자 중 한 명인 원로 축구인 김화집씨가 7일 오전 4시30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7세.
지난해 9월 홍덕영씨가 별세한 데 이어 김씨까지 타계함에 따라 해방 직후 메이저 대회에서 뛰었거나 코칭스태프, 기술위원 등으로 활동했던 ‘한국축구 1세대’는 모두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게 됐다.
1909년 평양에서 출생한 고인은 배재고보, 보성전문에서 오른쪽 공격수로 활약했다. 이어 1930년 경성축구단에서 대표선수를 지낸 후 심판으로 변신, 1951년 한국 최초로 국제축구연맹(FIFA) 공인 국제심판이 됐다.
특히 고인은 1949년 서울 중앙여중 교사로 재직하면서 아시아에서 최초로 여자 축구팀을 창단하고, 국내 최초로 여자축구대회를 창설하는 등 국내에서 여자축구가 뿌리를 내리는 기반을 마련했다. 1945년부터 1958년까지는 대한축구협회 이사를 지내면서 1948년 런던올림픽과 1954년 스위스월드컵에 나가는 대표팀을 적극 후원했다.
고인의 축구에 대한 열정은 이후에도 식지 않았다. 1985년에는 대한축구협회 여자축구위원장을 맡으면서 한동안 명맥이 끊겼던 여자축구를 부흥시켰고, 1990년부터 4년 동안은 한국 OB축구회 회장으로 활동했다. 1999년에는 90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서울 잠실운동장에서 벌어진 프로축구 K리그 올스타전 시축자로 나서는 등 식지 않는 축구사랑으로 후배들의 귀감이 됐다. 이 같은 공로로 고인은 지난해 3월 대한축구협회가 선정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유족은 장남 재환씨 등 3남2녀.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영결식은 9일 오전8시 대한축구협회장으로 치러진다. (02)3010_2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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