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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길/ '재야 농민 독립운동사가' 별명 추경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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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길/ '재야 농민 독립운동사가' 별명 추경화씨

입력
2006.07.11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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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간 독립운동 유공자 500여명을 발굴해 낸 농촌의 한 무명 독립운동사가가 있다. 바로 ‘사마천의 정신을 계승하는 사학자’ ‘농민독립운동사가’ ‘재야향토사학가’ 등의 별명이 붙어 다니는 경남 진주시 추경화(55ㆍ사진)씨다.

농사 짓고 돼지 기르는 평범한 농민이던 그는 1986년부터 본업도 내팽개치고 ‘돈도 안 되는’ 독립운동 유공자 찾기에 나서 한결같이 이 일에 파묻혀 지내고 있다. 추씨가 그 동안 찾아낸 500여명의 독립유공자 가운데 100여명은 훈ㆍ포장까지 받았다. 정부와 전문기관조차 이루기 힘든 성과다.

86년 광복절 41주년을 앞두고 일제시대 호남지방에서 의병활동을 주도한 황준성 열사를 발굴, 건국훈장 국민장을 바친 것이 그의 첫 결실이었다. 무명 독립운동 유공자 발굴과 함께 독립운동사에 기록되지 않은 항일투쟁활동도 잇달아 찾아냈다. 31년 경북 청도군 군용열차 탈취미수사건 주모자 3명과 40년 제2광주학생사건 주모자 3명의 활약상을 밝혀내 87년 광복절에 건국 훈ㆍ포장을 안겼다.

96년에는 경남 산청군 항일유공자 88명을 찾아 추모비를 건립했으며, 2001년에는 경남 하동군 화개장터 3ㆍ1만세운동 기록을 찾은 뒤 주머니 돈을 털어 기념비를 직접 세웠다. 올해 3ㆍ1절 때도 진주시 출신 박수명 열사를 발굴, 건국훈장 애족장을 바쳤다.

“뚜렷한 계기는 없지만 증조부가 일제치하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 확인에 나선 것이 시발점이 된 셈입니다.”

하지만 추씨의 ‘대업(大業)’은 고행 그 자체였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 고서점을 비롯, 전국 방방곡곡 찾아 다니지 않은 곳이 없다. 헌 책방 ‘도둑 독서’, 정부기록보존소 재판기록 등 자료수집, 족보 채록 및 대조, 비문 확인 등 까다로운 확인작업에 많은 시간을 쏟아 부었다. 여기에는 30세가 넘어 광주대에 편입, 도서관학을 전공한 것이 적잖은 보탬이 됐다.

이러다 보니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의 교육과 집안 살림은 직장생활을 하는 부인 몫으로 남았다.

그의 열정은 문학과 출판에도 고스란히 녹아내려 민족정기를 높이는 데 톡톡히 한 몫을 하고 있다. 95년 계간 ‘오늘의 문학’ 시 부문에 ‘조국통일을 위하여’가 추천되면서 문단에 데뷔한 그는 이후 ‘아름다운 항일정신’(99년)과 ‘해송이 비바람에 시달려도’(2000) 등 2권의 시집을 냈다. 95년과 97년에는 ‘항일투사열전’ 1, 2권을 잇달아 출간했으며 2001년에는 하동군의 지원을 받아 ‘하동군 독립유공자 공훈록’을 펴냈다.

지금까지 광복절을 맞아 6차례 ‘항일투쟁 기록 및 사진전시회’를 열었던 그는 올해도 어김없이 진주시의 경남도문화예술회관에서 전시회를 준비 중이다.

추씨는 “내 손으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 유공자들을 찾아냈다는 데 더없이 보람을 느낀다”며 “이른 시일 내에 ‘항일투사열전’의 완결판인 3권을 출간해야 할 텐데…”라며 특유의 너털웃음을 웃어보였다.

창원= 글ㆍ사진 이동렬기자 d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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