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ㆍ31 지방선거를 통해 당선된 자치단체장들이 업무를 시작했다. 힘찬 박수를 보낸다. 월드컵 열풍에 파묻히기는 했지만, 지난 지방선거는 엄청난 것이었다. 표를 찍은 국민들조차 이런 결과가 나온 것에 놀랄 지경이었다. 아마 집권세력이 국민으로부터 이토록 철저히 외면 받은 경우도 드물 것이다.
● 현명한 국민의 엄한 경고
사실 현재의 집권 여당 역시 국민이 만들어준 것이나 다름없다. 2004년의 대통령 탄핵이 없었다면,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국회에 진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때 국민은 대통령의 부적절한 언행에도 불구하고 오만한 야당을 심판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무능한 여당에 엄한 경고를 보냈다. 현명한 국민이다.
개혁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등에 업고서 집권한 정부와 여당은 크게 세 가지 약속을 어겼다. 우선 정치논리에 매달려 경제를 살리지 못했다. 그 결과 가장 커다란 피해를 본 사람은 서민층과 젊은이들이다. 소비는 줄고, 일자리가 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집권세력이야말로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킨 장본인이다.
둘째 부동산 문제를 증폭시켰다. 더 좋은 삶의 질을 바라는 국민의 요구를 외면한 채, 금욕만을 강조하는 정책으로 오히려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다. 이 폭등 현상은 강남이라는 한 지역만의 일이 아니라, 전국에 걸친 문제가 되었다.
셋째, 남북관계를 안정시키지 못했다. 전통적인 동맹국과의 갈등을 무릅쓰면서까지 북한에 대해 유화 정책을 사용했지만, 돌아온 것은 핵무기와 미사일이다. 동맹국에 대해서는 그토록 자주와 자존심을 내세운 사람들이 적대국 북한에 대해서는 정말 당당했는가. 우리 국민은 북한 때문에 온갖 것을 주고도 뺨을 맞은 배신감에 시달리고 있다.
물론 지방선거는 지역을 위한 일꾼을 뽑는 일이다. 나는 지난 지방선거의 한 유세 현장을 지나칠 일이 있었다. 선거 운동원들만 시끄러울 뿐, 동네의 개조차도 들여다보지 않는 썰렁한 자리였다. 연단에서는 한 입후보자가 통일시대를 앞당기겠다고 큰소리치고 있었다. 그런데 지방선거 입후보자면 동네일이나 깔끔하고 투명하게 잘 할 고민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 국민 살림을 보살펴야
사람에게는 격에 맞는 처신이 있다. 그 격을 지키지 못하면 민망해진다. 국민의 일상을 돌보아야 할 정치 지도자들이 제 일은 안 하고, 북한을 지금처럼 만든 자주니 민족이니 하는 허튼 소리나 해대니, 지방선거 입후보자들도 덩달아 통일과 개혁의 역군이 되겠다고 목청을 높인다. 스님을 쫓아가면 절간으로 가고, 동네 개를 쫓아가면 똥간으로 간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선거에서 잘못 따라간 입후보자들은 많이 떨어졌다.
어차피 지금 정부는 상처 받은 국민의 마음을 위로할 의지도 능력도 없어 보인다. 그들은 시계를 20년쯤 전으로 돌려놓고는 국민들에게 ‘산자여 따르라’며 외치고만 있다. 그러니 새로 업무를 시작한 자치단체장들만이라도 제발 국민의 살림을 알뜰하게 보살피기 바란다. 입으로 말고, 행동으로. 그래서 4년 뒤, 단체장을 물러나는 날, 주민들이 따뜻한 박수를 칠 수 있도록.
박철화 문학평론가ㆍ중앙대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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