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활동 지원은커녕 자치단체가 작가의 작업장 철거에 앞장서면 되겠습니까.”
일산신도시 등 경기 고양시에 거주하는 화가, 조각가 등 미술인들이 경기도와 고양시의 문화예술 홀대와 무관심을 성토하고 나섰다. 이들은 “개발 논리에 떠밀려 문화예술인들의 작업공간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며 문화예술인촌 조성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고양시에는 현재 500여명의 화가, 조각가, 공예가 등 많은 미술인들이 살고 있다. 그러나 일산신도시의 경우 도시 개발이 곳곳에서 진행되면서 지역 예술인들의 창착공간이 수용당하거나 사라지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이 때문에 많은 작가들이 작품활동을 할 수 있는 작업실이 사라져 인근 창고나 축사 등을 임대해 편법으로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행정당국은 형식적이고 성의없는 문화행정으로 반발을 사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가 하종현(71) 서울시립미술관 관장의 작업장 부지 문제. 한국 현대미술 선구자의 한 사람으로 화단 원로인 하 관장은 1999년 일산신도시 장항동으로 이주해 450평의 작업실과 사택을 지어 거주하고 있다. 그러나 2003년 이 일대에 관광문화단지(현 한류우드) 건립이 계획되고 지난해 3월 민간사업자가 선정되면서 하 관장의 작업장도 수용돼 사라질 처지에 놓였다.
고양시미술협회 전 지부장 오연숙(45ㆍ한서대 예술학과 교수)씨는 “하종현 화백의 작업장은 수많은 작품은 물론 미술역사자료, 화구 등을 갖추고 있어 그 자체가 미술박물관이자 문화시설”이라며 “이 같은 소중한 문화 컨텐츠를 보존하는 것도 바로 한류우드 정신 아니냐”고 말했다.
보리밭 화가로 유명한 이숙자(64) 고려대 미술학부 교수는 “예술인들이 작품활동을 하는 작업장은 살아있는 문화콘텐츠이며 땀과 혼이 배어있는 문화현장”이라며 “이런 귀중한 자산을 보존하고 활성화시키기 위한 고양시와 경기도의 문화정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고양시 원로미술작가회 회장 박순범(62)씨도 “문화예술에는 새로운 것의 창조 뿐아니라 기존의 가치있는 현장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도 포함된다”며 “한류우드가 문화관광사업을 발전ㆍ육성시키기 위한 취지라면 예술가의 혼이 서린 작업장을 그대로 살려서 자자손손 물려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단법인 한국미술협회 전국 91개 지부 대표들도 최근 “하종현 작업장을 개발지역에서 제외하라”는 내용의 서명서를 경기도와 고양시에 냈다.
이들은 “서울시는 시인 서정주, 박목월의 거주지를 문화시설로 지정했고, 박수근 화백의 고향인 강원 양구군은 미술관을 지어주는 등 전국 각 시ㆍ도가 예술인 우대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며 “경기도와 고양시는 예술인을 무시하는 정책을 지양하고 예술인촌 건립에 적극 나서라”고 요구했다.
하종현 관장은 “자비로 미술관을 지어 고양시에 무상 기증하려 했는데 작업장을 철거해야 한다니 나의 오랜 꿈이 무산될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고양시 관계자는 “개인 작업장은 보존이 힘든 실정”이라며 “한류우드 내에 고양시립박물관 건립을 추진중이며, 이 경우 박물관 내 작가들의 작업공간을 별도로 만들어 주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송원영기자 wy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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