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월 언론에 4인조 강도 ‘미수’단 검거에 관한 짤막한 기사가 실렸다. 알부자 설렁탕집 사장을 납치해 돈을 뜯어내려다 끝내 ‘만나지 못해’ 실패, 모텔에 들어가 투숙객 돈을 뺏으려다 “남자 4명이 한 방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중도 포기, 구멍 가게를 털려다 금고 문이 잠겨있어 또 실패…. 치밀한 계획도, 대담한 실행력도, 금고 하나 뜯을 실력도 없이 어설프게 일을 벌이다가 화려한 ‘미수’ 전력만 쌓은 채 쇠고랑을 차게 된 것이다.
쓴웃음을 자아내는 이들의 황당한 범죄 행각이 드라마로 제작돼 전파를 탄다. KBS 2TV ‘드라마시티’에서 8일 밤 11시 15분 방송하는 ‘누가 4인조를 두려워하랴’.
한총련 문제를 다룬 ‘문제작’ 등 사회성 짙은 작품을 선보여 온 이진서 PD는 이 기사에서 “우습지만 가슴 아픈 우리 시대의 자화상”을 읽어내고 사회 양극화란 묵직한 주제를 얹어 한 편의 블랙 코미디를 만들어냈다.
극중 주인공은 해고 위기에 처한 중국 음식점 종업원들. 돈 없는 설움에 시달리는 배달원 팔만, 능력 없는 주방장 춘범, 못 생겨서 가수 꿈을 이루지 못한 카운터 미희, 대학 진학이 평생 소원인 주방 보조 석봉 등은 양극화 사회의 힘없는 약자들을 대변한다. 드라마는 이들 4명이 실제 기사 속의 4인조처럼 어설프게 ‘한탕’을 모의하고 범행에 나섰다가 번번이 실패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세상 어느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회적 약자들의 아픔과 설움, 분노를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 하고 묻는다.
법학을 전공한 대학 교수로 이 작품을 통해 드라마 작가로 데뷔한 김우진(필명)씨는 “우리 사회가 이들을 두려워 해줬으면 하는 심정으로 글을 썼다”면서 “양극화 문제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는 거창한 차원이 아니라 시대상을 있는 그대로 풍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개그맨 정준하와 연극 무대와 영화에서 잔뼈가 굵은 박길수가 각각 팔만과 춘범 역으로 출연하고, 서민 드라마 ‘한 지붕 세 가족’에서 순돌이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이건주가 석봉 역을 맡았다. 미희 역을 맡은 개그우먼 김미진은 드라마의 주제가 함축된 그룹 ABBA의 ‘The Winner Takes It All’을 직접 불러 눈길을 끈다.
이희정 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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