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만 되면 ‘패션칼럼니스트’를 찾는 전화가 잦아진다. “박선생님이시죠? 여기는 OO방송사인데요. 인터뷰 요청 좀 부탁드려요. 주제요? 노출패션입니다. 여름이면 여성들의 옷차림이 왜 짧아지는지 답해주시면 됩니다~.”
‘올 여름은 무더울 것’이라는 기상예보가 시작되면 옷차림의 ‘노출’에도 비상이 걸린다. 더워서 옷 좀 벗겠다는데 어쩌랴 마는, 남들 눈치 보며 어여쁘게 벗어보여야 하는 시대의 요구를 따라야 하고, 드러나는 살집을 꾸미는 재주도 남달라야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이어질 헐벗는 패션, 2006년 여름의 노출패션을 들여다본다.
이번 월드컵의 거리응원전. 언론의 카메라 앵글이 주목한 것은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사람들의 모습 보다는 경쟁하듯 살갗을 드러낸 젊은 여성들의 노출 패션이었다. 한쪽 어깨를 비스듬히 내린 언밸런스 상의, 어깨와 소매가 없는 튜브 톱, 박스 티셔츠의 허리를 잘라 배꼽 티로 변형하고 등판을 부분적으로 잘라 허연 잔등이 노출되는 백리스 스타일, 목 뒤로 끈을 묶어 어깨와 등을 함께 드러나는 홀터넥 스타일 등 과감해진 노출이 붉은 물결 속에서 시선을 모았다.
민소매 상의, 초미니스커트를 입고, 발을 훤히 내 놓는 조리 슬리퍼를 당연한 듯 신고, 망설임 없이 문밖으로 나서게 된 것은 불과 몇 년 되지 않았다. 4년 전, 2002 한일월드컵의 뜨거운 열기에 힘입어 스포츠룩이 모든 패션을 지배하며 최대의 전성기를 구가한 적이 있었다. 운동장을 벗어난 스포츠룩은 건강한 몸에 주목했고, 건강하게 잘 가꾸어진 ‘몸’을 밖으로 드러내는 일은 칭찬 받아야 마땅할 자랑거리가 됐다.
드디어 빛을 보게 된 근육질의 갈색 팔뚝과 복근, 종아리, 허벅지…. 운동복의 유행은 성적으로 ‘섹시’했지만 결코 천박하지 않았다. 실내복이었던 추리닝이 당당히 거리를 활보하고 평상복과 외출복, 스포츠룩과 캐주얼, 정장이 모두 뒤섞이고 버무려져서 재탄생하는 패션의 자유가 실현됨과 동시에 숨겨졌던 맨살도 해방 된 것이다.
그 최초의 계기는 연예인들의 ‘누드’잔치. 그녀, 혹은 그들의 벗은 몸에 익숙해진 보통사람들은 주변의 노출에 무뎌지고 노출의 자극을 스스로 즐기기 시작한다. 물론, 100년 만에 찾아왔다는 무더위의 영향도 노출패션의 무시 못 할 이유였지만. 2006년 노출패션은 축제의 장으로 변한 월드컵 거리응원전에서 사람들과 가장 먼저 대면했다. ‘페스티벌’의 흥분과 동참의 분위기가 노출을 기꺼이 허락했다.
이번 여름의 노출은 다양성을 띈다. 미니스커트는 기본, 숏팬츠와 홀터넷 톱, 언밸런스 네크라인, 튜브 톱, 백리스 등등. 가장 눈에 강하게 들어온 노출은 어깨를 드러내는 ‘홀터네크라인’의 뒤를 이어 아예 어깨선을 제거한 ‘튜브(tube) 톱’, 튜브 톱이 확장된 ‘튜브드레스’의 유행이다.
튜브 톱은 둥근 관처럼 생긴 모양으로 어깨 끈이 달리지 않아 어깨가 완전히 노출된 상의를 말한다. 어깨 끈이 없어 흘러내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가슴윗부분을 고무 밴드로 처리하거나 끈으로 묶어 여민다. 연결 끈이 없으니 아슬아슬하다. 튜브 톱은 성적인 매력보다는 깜찍하고 여성스럽게 보인다.
이와 함께 디스코 풍에 영향을 받은 헐렁한 상의가 자연스럽게 어깨가 흘러내리는 듯한 언밸런스 네크라인을 만들어 한쪽 어깨를 드러냈고, 등을 노출하는 백리스(backless) 스타일과 어깨선에 슬릿을 넣는 의외의 노출도 시선을 끌고 있다.
노출하면 속옷이 겉으로 보이는 란제리패션을 빼 놓을 수 없다. 노출상의 사이로 살짝 드러나던 속옷에서 브래지어 끈을 투명 끈으로 바꿔 맸던 것은 이제 촌스럽다. 색색의 형광색 브래지어 끈을 드러내 입는 것은 이제 아무 일도 아니다. 지난 봄부터 유행한 레이스 장식의 인기로 속옷처럼 보이는 레이스 상의를 밖에 내어 입는 것으로 ‘란제리’ 노출 패션을 대표한다. 티셔츠 위에 란제리 톱을 겹쳐 입는 ‘주객전도(主客顚倒)’ 패션이라고 할까.
확실히 노출은 주목의 대상이다. 노출은 그 부위와 노출 면적에 따라 보는 이들에게 미적 자극을 주지만 반대로 ‘노출증 환자’나 극단주의자로 몰릴 수 있다. 흥분한 훌리건들이 벗은 몸으로 운동장을 내달리는 행위나 모피반대를 외치는 동물애호가들의 나체 시위 등은 주목을 끌면서 자신의 의사를 강하게 전달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신체 노출은 결국 자기만족의 표현이다. 인간에게 의복은 신체를 감추면서도 드러내고 싶어 하는 ‘양면성’의 깃발이니까.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suzanpark@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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