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 기획한 작품이다. 정부는 침묵하고 있고, 사학계도 이렇다 할 말을 못하고 있으니, 작가라도 나서 민족혼을 일깨우겠다는 것이다.”
8일 첫 방송하는 SBS 대하사극 ‘연개소문’의 이환경(56) 작가가 밝힌 출사표에는 비장한 결의가 녹아있다. ‘연개소문’은 고구려 사극 열풍에 불을 지핀 MBC ‘주몽’의 판타지식 접근과 달리, 사료에 기반한 정통 사극을 표방한다. 4일 서울 문래동 작업실에서 그를 만나 100회 대장정에 나서는 소감과 품은 뜻을 들어봤다.
-‘제국의 아침’ 이후 오랜만의 사극인데, 왜 하필 연개소문인가.
“작가는 늘 새로운 세계를 개척해야 한다. ‘태조 왕건’ ‘용의 눈물’로 고려, 조선의 개국 이야기를 다뤘고, 이제 고구려를 여는 것이다. 우리는 반도가 아니라 대륙을 호령하던 민족인데, 신라의 통일로 대륙을 잃어버렸다. 수, 당과의 7번에 걸친 전쟁을 모두 승리로 이끈 연개소문을 민족의 영웅으로 되살리고, 고구려의 대륙 경영을 알리고 싶다. 그래서 어려움이 많더라도 정사(正史)로 가려는 것이다.”
-‘야인시대’ 이후 영웅 이야기에 주목하고 있는 이유는.
“정치, 사회가 너무 급변하다 보니 요즘 젊은 세대는 과거를 잃어버렸다. 비극이다. 그들에게 지금의 우리를 만들고 세계로 뻗어나간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주인공의 영웅적 미화가 자칫 역사 왜곡이 될 수도 있지 않나. ‘연개소문’도 예고편 내용을 두고 벌써부터 논란이 일고 있는데.
“어떤 드라마든 주인공을 미화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작가 고유의 해석으로 봐줬으면 한다. 최대한 정사를 반영했고, 연개소문의 개인사는 신채호 선생이 중국의 설화와 야사까지 뒤져 남긴 기록을 토대로 했다. 아버지가 쉰 나이에 연개소문을 낳아 그가‘갓쉰동이’라 불렸다든가, 종으로 팔려갔다는 등 설화에 바탕을 둔 내용도 다루지만,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은 사실과 거리가 있다고 밝히고 들어갈 생각이다.”
-중국에서 한국 드라마 수입을 중단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오는데.
“일종의 알레르기다. 중국을 통일한 수와 당이 고구려에 형편없이 당한 이야기를 그리는데 마음이 편할 리 있겠나. 하지만 역사적 사실 아니냐. 돈보다는 우리의 역사적 자부심을 세우는 일이 먼저다. 그게 작가의 역할이다.”
-MBC ‘주몽’에 대한 평가는.
“재미있게 본다. 워낙 사료가 없어 오락에 기울었지만, 고구려 건국과정을 알리는 것은 의미가 있다. 다만 사극이라고 할 수는 없다. 고구려 역사는 판타지로만 가지고 놀기에는 너무 아깝다. ‘연개소문’을 통해 사료에 기반한 사극의 진한 맛을 보여주고 싶다.”
-요즘은 ‘주몽’처럼 부드러운 남성상을 보여주거나 멜로가 강한 퓨전 사극이 대세인데.
“솔직히 고민이다. 하지만 내 작품은 평소 TV 앞에 앉는 남성들이 즐겨본다. 그들은 남성다운 호쾌함에 흠뻑 젖고 싶어한다. 타깃 층이 다르니 내 스타일대로 가겠다.”
-제작비가 400억원이나 투입돼 시청률 부담이 클텐데.
“그렇다. 대신 옛날에는 불가능했던 것들을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해 그릴 수 있다. 살수대첩, 안시성 전투 등을 제대로 한 번 보여주고 싶다. 상업방송 SBS로서는 굉장히 과격한 투자를 한 셈인데, 작품성과 재미를 모두 추구하도록 애쓰겠다.”
-드라마가 산업화하면서 작가도 제작사와 전속계약을 하는 등 변화가 많은데.
“위험하다. 작가들이 돈에 휘둘리고 분업화에 종속되면 상업성만 좇아 자극적인 작품만 양산된다. 그건 작가가 아니라 광대다. 한자로 지을 작(作)에 집 가(家)를 쓰는 작가는 자기의 집을 지을 수 있는 사람, 자기 철학으로 그 집을 채울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현대 정치 드라마,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 이야기를 한 번 써보고 싶다.”
강명석 객원기자 lennone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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