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5일 미사일 발사는 다목적 카드 성격이 짙다.
우선 미국의 압박에 대항, 또 한 번 ‘벼랑 끝 전술’을 시도한 측면이 강하다. 북미대화와 금융제재 해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실제 행동에 들어간 것이다. 또 주요 외화벌이 수단 중 하나인 미사일 기술을 과시하려는 목적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의 벼랑 끝 전술 재연
북한은 1998년 8월 대포동 1호 미사일 발사로 재미를 봤다. 94년 북미 제네바 합의 이후 화해무드 덕분에 96년 4월부터는 북미 미사일회담도 열렸다. 하지만 북미 양측의 입장이 맞서 진전이 없었다. 지지부진한 국면이 이어지자 북한은 일본 열도 넘어 태평양으로 미사일을 쏜 것이다.
미국 등 전세계가 경악했다. 당시 미 클린턴 행정부는 강경 대응 움직임을 보이다 결국 미사일회담을 재개했고, 99년 8월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포기를 조건으로 대북 경제제재 해제를 결정했다. 북한 입장에서는 당시 벼랑 끝에 서서 버틴 전술이 미국의 양보를 이끌어냈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미국과 대화하고 싶은 북한
북한은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에도 미국을 자극하려 한 것 같다. 북한은 지난달 1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발표,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를 평양으로 초청했다. 북미 직접대화를 하자는 제안이었다. 동시에 “미국이 우리를 계속 적대시하고 압박하면 부득불 강경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엄포를 놓았다.
하지만 미국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북한은 지난달 중순 함북 화대군 무수단리의 미사일 발사시험장 주변에서 시위를 시작했다. 동시에 뉴욕에 있던 한성렬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를 통해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고 양동 작전을 펼쳤다.
미국은 여전히 이를 무시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대북 선제 공격론도 제기됐다. 결국 북한은 미국의 무시 행태를 참지 못하고 미사일 발사를 감행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좌절과 분노
북한 입장에서는 분노도 있을 수 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지난해 6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만나 미사일 폐기 의사를 밝힌 적이 있다. 그는 당시 “미국과 수교하고 우방국이 된다면”이라고 말했고, 이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미사일 포기도 결단할 수 있다는 이야기로 해석됐다. 평소 미사일은 자주권 문제라며 강경했던 김 위원장과 북한으로선 상당한 양보였다.
그러나 지난 1년간 금융제재 등 미 행정부의 대북 압박은 오히려 거세졌다. “무조건 6자회담에 복귀하고 핵을 포기하라”며 몰아세웠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지난해 2월 핵무기 보유 선언과 유사한 깜짝 공세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외화벌이 수단 미사일
미사일 발사가 주요 외화벌이 수단인 미사일 수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계산했을 수도 있다. 70년대 소련제 스커드 미사일 개량에 성공한 북한은 이란 시리아 등 중동국가에 매년 1억 달러 상당의 미사일을 수출해왔다. 북한은 세계 6위권의 미사일 수출국가다. 그러나 98년 대포동 1호 미사일을 쏜 뒤 이렇다 할 성능 검증이 없었기에 이번에는 시험 발사가 필요했을 수 있다.
특히 5일 새벽 6발의 미사일을 발사한 뒤 오후 5시20분 1발의 미사일을 추가 발사한 정황도 성능 개량실험의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미사일 발사 유예선언(모라토리엄)이 어차피 깨진 김에 그 동안 미뤘던 미사일 성능실험을 몰아서 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일본 언론은 1일 이란의 미사일 기술자들이 북한에 머무르고 있다고 보도, 주요 미사일 구매국인 이란 참관단에게 기술을 과시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군부와 김정일 위원장의 오판
이번 미사일 발사 결정에는 북한 군부의 강경 입장도 한 몫 한 것 같다. 최근 군부는 남북 열차 시험운행 취소, 각종 경제협력 제동 걸기에 나서고 있다. 개혁개방이 진행될수록 입지가 좁아진다는 판단 때문이다. 위기감에 빠진 그들이 김 위원장에게 발사를 건의, 승인을 얻어냈을 개연성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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