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좀 무섭게 해주면 안되겠니?"
‘안 무서운 공포영화’가 2006년 공포영화의 새 트렌드를 이루고 있다. ‘크립’ ‘오멘’ ‘착신아리 파이널’ 등 외제 공포영화에 이어 ‘아랑’ ‘아파트’ 등 국산 공포영화도 릴레이 개봉을 시작했지만, 공포의 강도와 밀도 면에서 모두 함량 미달이다. 사지절단에 피 칠갑한 귀신이 나오는 호러영화나 흉기로 난도질하는 슬래셔 무비가 식상해지면서 일상에 천착한 공포가 공포영화의 새 주류로 자리잡았으나, 스릴러, 드라마 등 타 장르와의 결합과정에서 공포영화의 본분을 잊고 휘청거리는 양상이다.
6일 개봉하는 고소영 주연의 ‘아파트’(18세)는 간이 작은 관객도 상영 내내 두 눈 부릅뜨고 볼 수 있는 ‘독특한’ 공포영화다. 친밀한 일상의 공간 아파트를 밤 9시 56분만 되면 사람이 죽어나가는 공포의 공간으로 탈바꿈시켰지만, 난삽한 스토리를 짜맞추느라 관객은 무서워할 새가 없다. 소통 부재의 공간에서 외로움에 허덕이는 군상들과 그들이 서로에게 가하는 폭력은 피상적으로 스크린 위를 훑고, 토막난 장면들은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다.
‘가위’ ‘폰’ ‘분신사바’에 이어 네번째 공포영화를 만든 안병기 감독은 “공포 영화를 4편이나 하니 새로운 공포장면을 보여주기 어려웠다”고 ‘실토’하며 “드라마에서 느껴지는 공포를 강조하고 싶었다”고 말했지만, 무서운 장면이 나올라치면 작정한 듯 먼저 움직여 힌트를 주는 카메라와 예상대로 펼쳐지는 상투적 전개로 인해 공포는 휘발돼 버렸다. 공포에 떨기보다는 짜증스런 표정으로 일관하는 고소영의 연기도 공포의 수위를 낮추는 데 크게 기여한다.
아랑설화를 차용한 송윤아의 ‘아랑’은 ‘사필귀정’과 ‘인과응보’의 법칙에 따라 죽고 죽이는 드라마 구조로 인해 공포의 최대치가 많이 낮아졌다. 드라마가 너무 강해 공포에 할당된 시간과 감성이 상당 부분 축소됐고, 살인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모두 조역들이라 주인공 송윤아가 극중에서 별로 하는 일 없어보이는 결정적 한계를 드러낸다.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통한 죽음의 전파를 다룬 ‘착신아리 파이널’도 자신이 죽지 않기 위해 친구를 희생시켜야 하는 설정으로 인간의 이기심을 조명하지만, 어설픈 드라마 탓에 공포의 크기만 줄었다. 잔인한 살인장면이 간간히 공포영화의 구색을 맞추지만, 이도 저도 아닌 포즈로 공포의 본령이 훼손됐다. 진짜 무서운 공포영화 보기가 어려운 여름이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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