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이, 은퇴하라!” 4일 오전 브라질의 상파울루 공항. 프랑스와의 8강전에서 패하고 귀국한 브라질 축구 선수 9명을 향해 팬들의 성토가 가해졌다. ‘늙은이’란 월드컵 4회 연속 출장한 36살의 주장 카푸를 지칭한 말이다. 선수들은 활주로에 준비된 승용차를 타고 도망치듯 공항을 떠났다.
같은 날 리우 데 자네이로 공항에도 팬들이 모여들었다. 카를루스 파헤이라 대표팀 감독을 기다리는 군중이었다. “월급도둑!” 성난 목소리가 청사에 울려 퍼지는 가운데 파헤이라 감독은 공항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호나우두, 호나우지뉴 등 유럽팀에 적을 둔 선수들은 아예 귀향을 피했다.
제3세대 드림팀으로 불리던 브라질 축구 대표팀이 들끓는 여론에 밀려 불명예 은퇴할 것으로 보인다. 삼바축구를 이끌었던 대스타들 대부분이 2010년 남아공월드컵 때 대표팀 유니폼을 입을 수 있을지 낙관할 수 없는 처지다. 브라질축구협회는 곧 큰 폭의 대표팀 쇄신책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파헤이라 감독의 사퇴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진다. 그는 4일 브라질축구협회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협회 회장과 상의 한 뒤 거취에 대해 밝히겠다”며 사실상 자진 사퇴를 거부했다. 그러나 정치권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그를 가만 두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카푸와 수비수 카를루스 등 30대 노장선수가 대표팀을 떠나는 것은 이미 결정됐다.
월드컵 개인 통산 최다골(15골)의 위업을 이룬 호나우두의 입지도 불안하다. “2010년 월드컵까지는 더 뛸 수 있다”며 명예회복을 벼르고 있지만 ‘살찐 호나우두’ 대신에 ‘포스트 호나우두’를 요구하는 팬들의 목소리가 더 크다. 2010년이면 그는 34세가 된다.
대회에서 한 골도 못 뽑은 호나우지뉴도 대표팀 잔류를 자신할 수 없다. 현지 언론들은 호나우지뉴의 부진을 비난하는 기사들을 경쟁하듯 쏟아내고 있다. 성난 팬들은 호나우지뉴의 고향에 있는 호나우지뉴 동상을 불태우기까지 했다.
브라질 팀이 월드컵 무대에서 패배하고 중도 귀국한 것이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처럼 거센 비난을 받은 경우는 드물었다. “아름다운 축구는 필요 없다, 이기는 축구를 해야 한다”고 호언장담하던 파헤이라 감독이기에 팬들의 분노가 더욱 크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 8강전에서 이탈리아에 3대2로 패배한 대표팀은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화려한 명승부전을 보여줬다는 이유였다. 선수ㆍ코치단의 물갈이와 함께 브라질팀의 스타일도 ‘브라질다운 축구’로 회귀할 것이라는 관측이 그래서 나오고 있다.
김일환 기자 kev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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