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를 겪고 있으면서 비장애인도 하기 힘든 판소리 춘향가를 완창해 화제가 됐던 최 준(서울 고명중 3년)군이 이번엔 피아노 솜씨를 선보였다.
최군은 4일 저녁 서울 금호아트홀에서 열린 음악회 '휴(休) 여름, 쉬어가다'에서 슈베르트의 '즉흥환상곡'을 혼자 쳤다. 피아노 선생님 신민임(서울시립대 강사)씨와 함께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3번' 2악장과 베토벤 소나타 8번 '비창'의 2악장도 연주했다.
최군처럼 발달장애를 겪고 있는 아이들의 음악치료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열린 이날 공연은 최영미 아나운서가 사회를 맡고 이주영(첼로) 이상주(테너) 김연수(플루트) 이미향(소프라노) 등 연주자가 무료로 출연했으며, 비디오아티스트 박준식 김현철씨가 영상으로 참여했다.
최군은 혼자 살아가기 힘들다는 발달장애 2급의 자폐아다. 언어장애, 사회성 결핍, 선풍기나 자동차 바퀴에 집착하는 특이행동을 보이지만, 소리에 무척 민감하고 절대음감을 갖고 있어 한 번 들은 음악은 악보 없이도 바로 피아노로 치는 재능을 갖고 있다.
피아노는 초등학교 1학년 때, 판소리는 4학년 때 시작했다. 장애 치료를 위해 부모가 선택한 방법이었다. 힘든 길이었다. 피아노는 1년 만에 관뒀다가 6학년 때 다시 시작했다. 계속 같은 음만 두드리고 피아노를 뜯어봐서 고장내는 바람에 선생님이 포기했던 것. 판소리도 마찬가지.
최군의 어머니 모현선(44)씨는 "처음에는 30자자 사설 한 줄 나가는데 한 달이 걸린 적도 있다"며 "공책에 열번, 스무번 쓰고 읽고 하며 소리를 배웠는데 차츰 가속도가 붙어서 요즘은 아주 쉽게 넘어간다"고 전했다. "그래도 안 하겠다는 말 없이 잘 따라와준 준이가 대견하고, 인내심을 갖고 가르쳐준 선생님이 고맙다"고 했다.
모씨는 음악치료가 준이에게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고 말한다. 초등학교 입학 때만 해도 말 할 때 쓰는 단어가 다섯 개 정도에 그쳤던 아이가 판소리를 배운 뒤로는 발음이 아주 좋아지고 자기 표현도 부쩍 늘었다는 것.
판소리를 하고 나면 상기된 얼굴로 "하늘을 나는 것 같아요" "기분이 너무 좋아요" 그러고, 피아노에 대해서는 "소리가 너무 아름답지? 피아노 사주셔서 고맙습니다" 한단다. 모씨는 발달장애아를 위한 음악치료 프로그램이 국내에 없는 것을 무척 아쉬워한다.
이날 공연은 서울 강북장애인복지관이 주최하고, 발달장애아 음악치료 운동을 펼치고 있는 연주자 모임 '사랑울림'이 주관했다. 사랑울림은 최군의 피아노 선생님 신민임씨가 중심이 되어 지난해 출발했다. 신씨는 지난해 자신의 독주회 수익금 전액을 강북장애인복지관에 기부했다. 이 모임은 매년 4회 이상 음악회와 각종 행사로 기금을 모아갈 계획이다.
오미환 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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