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 사람이건 '역사 콤플렉스'가 전혀 없진 않겠지만, 유별나다 싶을 정도로 상호 대비되는 콤플렉스의 두 주인공이 있으니 바로 한국인과 미국인이다.
미국인부터 살펴보자. 최근 번역ㆍ출간된 '과거는 낯선 나라다'(김종원ㆍ한명숙 옮김)라는 책은 그 점을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미국 역사학자인 데이비드 로웬덜이 쓴 이 책은 번역본의 부피가 877쪽이나 될 정도로 방대한데, 미국인들의 역사 콤플렉스에 대해 적잖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 역사 없는 미국 자국중심주의 함몰
미국은 세계 최강국이지만, 다른 나라엔 다 있는 게 하나 없으니 그게 바로 '오랜 역사'다. 백인우월주의에 사로잡힌 그들이 그 땅에 살았던 인디언의 역사를 껴안을 리는 만무했으니, 이는 두고두고 미국인들의 정신세계를 괴롭혔다.
미국인들은 처음엔 '역사 조롱하기'로 대응했다. 유럽은 늙고 썩은 반면, 미국은 젊고 신선하다는 논리였다. 그렇지만 미국인들이 이 점을 공격적으로 강조하면 할수록 그들의 그 어떤 결핍을 폭로해줄 뿐이었다.
미국인들은 역사에 대해 이중적이었다. 저주하는 동시에 흠모했다. 자신의 능력으로 사 먹을 수 없는 걸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싫어한다고 강조함으로써 보상을 찾으려는 심리라고나 할까. 그 결과는 무엇인가. 미국인들은 다른 나라들의 경험에서 무언가 배우려 하지 않는다.
철저한 자국 중심주의에 푹 빠져 있다. 이는 '독선과 오만' 이전에 거의 후천적 유전자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세계 여론을 무시하는 부시 행정부의 '마이웨이'도 상당 부분 이와 관련된 것이다.
반면 한국인은 정반대다. 늘 '반만년' 역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도록 훈련은 받았지만, 한국인들은 그 역사에 '승리와 정복'이 없는 건 물론 당하고만 살아온 기록이 넘쳐나는 것에 대해 지긋지긋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일부는 고구려와 그 이전의 역사에만 심취하고 일부는 서양과 중국의 역사 쪽으로 달려간다. 웬 '로마인 이야기'와 '삼국지'는 그리도 좋아하는지! 특히 수난과 시련으로 점철된 한국 근현대사는 우울하다는 이유로 적극 외면한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한국인은 자국의 경험에서 무언가 배우려 하지 않는다. 늘 밖만 쳐다본다. 미국으로 갔다가 프랑스로 달려가고 네덜란드로 갔다가 스웨덴도 기웃거린다. 웬 모델은 그리도 많이 수입하는지 어지러울 정도다. 한국과 비슷한 수준의 나라엔 눈길도 주지 않는다. 자기보다 좀 못하다 싶으면 노골적으로 얕잡아 본다.
한국인은 자주 자신들의 과거를 타도와 극복의 대상으로 삼는다. 명암(明暗)의 양면을 다 보면 좋으련만 각자 자기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한다. 과거를 찬양과 계승의 대상으로 삼는 사람들도 오늘의 당파적 이해관계 연장선상에서 그러는 것인 경우가 많다.
미국인은 오랜 역사를 얕잡아보면서 뭐든 새롭게 창조하겠다는 야망과 열의로 성공을 거두었다. 한국인은 자기비하를 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앞서가는 나라들의 것을 무작정 들여와 그대로 해보겠다는 집념과 열의로 성공을 거두었다. 물론 두 나라 모두 그에 따른 비용과 희생을 치렀지만, '성공'이라 말해도 무방할 정도의 진보를 이룩했다. '콤플렉스는 나의 힘'이라는 말을 입증해준 대표적 사례라 해도 좋겠다.
● '반만년' 한국은 바깥만 쳐다봐
그러나 늘 행운이 따를 수는 없는 일이며,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도 있다. 이는 개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콤플렉스를 원동력으로 삼아 성공을 거둔 입지전적인 인물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멈출 때를 아는 것이다.
허나 그간 계속 반복돼 온 성공의 학습효과가 그걸 막으니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긴 하다. "콤플렉스를 내 글 쓰는데 바쳐야 하는데, 딴 글 읽는데 다 쓴다. 소중한 콤플렉스를 탕진하고 있다"는 소설가 장정일씨의 예리한 명언이 떠오른다.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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