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어선 초고령사회 일본은 출산율 1.08이라는 저출산 시대로 접어든 우리의 미래상을 시사하고 있다. 일본의 건강보험은 노인들이 많다 보니 고령 인구를 배려하면서 진화해 왔다.
1922년 건강보험법 제정과 함께 시작된 일본의 건강보험은 1차 세계대전 이후 급격히 늘어난 노동자 계층을 달래기 위한 ‘당근책’이었지만 이후 50년대를 지나 전국민을 대상으로 범위가 넓어지면서 73년에는 70세 이상 노인에게 ‘완전무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보험 수령층의 확대는 의료비의 막대한 증가를 불러 2002년에 ‘본인부담 10%’로 정책이 후퇴하기도 했다. 고령사회를 먼저 경험하고 있는 일본 건강 보험 80년 역사의 노하우를 들여다본다.
●5,000여개 보험자가 건보 운영
일본의 의료보험체계는 우리와 크게 다르다. 우리와 대만은 건강보험공단과 같이 단 하나의 ‘보험자’ 가 모든 보험가입자의 급여를 관리하는 시스템이지만 일본은 보험자가 무려 5,000여 개에 달한다.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부양자 포함 3,057만명)은 각 기업에서 운영되는 건강보험조합에 가입하고 중소기업 직장인(3,585만명)은 정부가 운영하는 건강보험조합에 들어간다. 나머지 자영자(4,619만명)들이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국민건강보험에 가입하는 형태이다.
저소득층 인구 129만명은 모든 의료비를 국가로부터 지원 받는다. 법정 보장률은 우리나라를 상회하는 평균 70%수준이다. 하지만 70세 이상 노인은 90%, 3세 미만 유아는 80%의 보장률을 적용, 의료수요가 많은 계층에 차별적으로 혜택을 더해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아직 비급여 분야인 선택진료비와 비슷한 형태의 특정요양비에 대해선 일본은 이미 급여를 시행하고 있다. 특정요양비는 200병상 이상에서의 초진, 고급병상 입원, 고도기술의료행위 로 치료를 받을 경우 해당되며 일반 치료와 마찬가지로 3~69세 환자에게 70%의 급여율이 적용된다.
일본의 고액요양비제도도 눈길을 끈다. 이 제도는 1개월 동안 의료기관에서 받은 진료비, 요양비의 본인부담금이 한도액(2만1,000엔)을 넘어서면 고액요양비로 포함돼 한도를 넘은 금액이 보험조합에서 지원되는 것을 말한다.
●카피약 처방 권유로 약값 안정화
일본의 건강보험은 보험보다는 조세 개념이 뚜렷하다. 보험 재정에서 차지하는 세금의 비중이 30%를 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재정절감에 대한 목소리가 우리와 마찬가지로 높고 점차 피보험자의 의료비 부담을 늘려가자는 여론도 일고 있다.
니키 류(二木立) 일본복지대학원 교수는 “환자 부담을 늘려 재정 압박을 막자는 게 현재 일본의 추세” 라며 “격변기를 맞고 있는 한국의 건강보험도 재정압박을 덜기 위해 생활 습관병의 예방에 치중하고 보험료율 인상을 통해서라도 중증질환에 대한 환자부담을 줄이는 게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일본의 의료비 중 약제비 비율은 20% 이하로 현재 우리 건강보험의 가장 큰 골칫거리인 약값 부담에서 해방된 지 오래다. 다나카 카츠야(田中一哉) 국민건강보험중앙회 이사는 “적정한 약가의 설정을 위해 2년마다 약의 보험등재가격과 실제가격을 실사해서 차이가 나면 보험급여를 삭감하는 등 강력한 정책을 펴왔다” 며 “본인부담이 매우 적은 노년층의 의료쇼핑을 방지하기 위해서 요양병원의 병상 13만개를 5년간에 걸쳐 감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츠치타 다케시(土田武史) 중앙사회보험의료협의회 위원장은 “동일한 효능을 가진 약들이 시장에 들어오면 가장 낮은 가격의 약가에 나머지 약들을 맞춘다” 며 “고가 오리지널 의약품의 시장 독점을 막기위해서라도 약사의 대체진료를 허용해 카피약 판매를 유도하도록 하는 것도 약가 낮추기에 큰 도움이 된다”고 지적했다.
도쿄ㆍ나고야=양홍주 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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