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후보의 당선이 유력시되던 멕시코 대통령 선거는 좌우파 후보 모두 자신의 승리를 주장하면서 예측 불허의 혼돈으로 치닫고 있다.
격오지가 많아 개표가 오래 걸리기 때문에 표본개표 결과로 당선자를 우선 발표하던 멕시코 선관위는 이번에는 발표를 할 수 없었다. 선관위는 전국 13만여 개 투표소 중 7,281곳을 표본 추출해 대통령 당선자를 과학적으로 예측하는 표본개표를 실시했으나, 1,2위 후보간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예상 득표율에 차이가 없다고 설명했다. 발표 연기는 표본개표에서 1,2위 후보간 득표율 차이가 극히 근소할 때 이뤄지는 조치다.
표본개표에선 우파를 대변하는 국민행동당(PAN)의 펠리페 칼데론 후보가 좌파를 대표하는 민주혁명당(PRD)의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후보를 약 1%포인트 앞서고 있다. 제도혁명당(PRI)의 로베르토 마드라조 후보는 상당히 뒤쳐져 3위에 머물 것이 확실하다.
로이터통신은 “멕시코 대선 레이스가 칼날 위에 놓여 있다”고 긴박한 상황을 전했다. 현재로선 공식 집계가 100% 마무리될 때까지 판세를 예단하기 어렵다. 선관위는 “컴퓨터를 동원한 정밀 개표가 마무리되는 5일 이전에는 최종 결과를 발표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선거운동본부에서 지지자들과 함께 개표 결과를 기다리던 칼데론 후보와 오브라도르 후보는 각각 당선을 장담했다. 오브라도르 후보는 “우리가 50만 표 이상 차이로 이겼다. 이 결과는 절대 뒤집힐 수 없으며 우리는 승리를 지켜낼 것이다”고 말했다. 오브라도르 지지자 수천명은 이날 멕시코시티 중앙광장에서 찬비를 맞으며 “선관위의 당선 후보 발표 연기는 사기”라고 주장했다. 칼데론 후보도 “나의 대선 승리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맞섰다.
두 후보 중 누가 당선되든 멕시코는 당분간 선거 후유증에서 벗어나기 힘들 전망이다. 멕시코는 6개월간의 선거전에서 국민도 지지 후보에 따라 좌우로 갈라져 대립이 심각해졌다. 개발된 북부는 시장경제와 일자리를 강조하는 칼데론을, 미개발된 남부는 빈자의 구세주를 자처하는 오브라도르를 밀고 있다. 여기에 선거결과 발표 지연은 대립을 증폭시킬 것이란 예상이다.
로이터통신은 “낙선한 후보가 결과에 불복하는 등의 불씨만 던져지면 폭력시위가 발생할 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막 성숙단계에 접어든 멕시코 민주주의와 경제가 혼란에 빠져들 수도 있다는 뜻이다. 멕시코 경제는 6년 마다 대선을 주기로 위기를 겪었다.
우려가 커지자 비센테 폭스 대통령은 “한 표 한 표가 적법하게 집계되고 있다. 법을 준수하고 선관위의 결과 발표를 존중하자”며 국민에게 진정을 호소했다. 유럽연합(EU)측 국제선거감시단도 “선거부정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중남미 좌파바람은 지난 5월 콜롬비아 대선에서 보수파 알바로 우리베 후보가 당선되며 잠시 멈칫했다. 멕시코에서 좌파가 집권하면 11월에 실시될 니카라과 대선도 좌파가 승리할 가능성이 커진다. 하지만 중남미 10개 좌파정권 대부분은 온건, 중도, 실용 좌파에 속하며, 페루 등 일부 국가는 ‘색깔만 좌파’로 분류된다.
이들 나라의 집권 세력은 좌파 정서를 선거전에 활용했지만, 집권 후 반미성향의 강경좌파인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쿠바와는 다른 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이번 선거에는 전체 유권자 7,130만명 가운데 4,200만명이 참여(투표율 60%)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연방하원(500명)ㆍ상원(128명)과 멕시코시티 시장, 3개주 주지사 선거도 동시에 실시됐다.
연방의원 선거에선 다수당이 나오지 않아 향후 정국운영이 더욱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연방의원 선거 출구조사에서 PAN은 35%, PRD는 31%, PRI는 28%를 득표했다. 3곳 주지사는 PAN 소속 후보가 모두 승리했으나, 수도 멕시코시티 시장은 PRD의 마르셀로 에바르드 후보의 당선이 유력해 역시 표가 갈렸다.
이태규 기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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