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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길 위의 보금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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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길 위의 보금자리

입력
2006.07.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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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수도여고 담장 아래 리어카 한 대가 우두커니 서 있다. 철봉으로 틀을 잡고 나무 널로 바닥을 깐, 보통 크기의 평범한 리어카. 대여섯 걸음 지나치다가 나는 되돌아갔다. 리어카의 오목한 안을 들여다보았다.

하, 누군가 부스스 빠져나간 흐트러진 잠자리! 분홍색 얇은 차렵이불이 반쯤 젖혀져, 바닥에 깔린 게 노란 꽃무늬 요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조그맣게 뭉쳐진 베개도 뒹굴고 있었다. 오후 네 시 반. 차들이 쉬지 않고 지나다니는 큰길가 보도블록 위였다.

리어카 주인은 누굴까? 여자는 아닐 것 같았다. 마흔 살은 넘었을 것 같고 예순 살은 안됐을 것 같다. 어떤 부자들에게는 캠핑카가 있듯이 그에겐 캠핑 리어카가 있다. 캠핑 리어카를 그는 잠자리로만 쓰는 걸까, 영업용도 겸할까? 그가 노숙하는 일용 노동자라면, 일감이 생길 때마다 침구를 개켜 한구석에 묶어두고 짐을 나르겠지.

리어카 밑창에 선반이나 서랍을 달면, 침구라든가 비올 때 덮을 작은 천막이라든가 라디오라든가를 간수할 수 있을 텐데. 사지를 쭉 뻗을 수는 없지만 아늑한 잠자리다. 길바닥의 찬기도 사뭇 덜어질 테지. 나는 길 위의 보금자리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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