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의 원형 경기장 콜로세움 외벽에 티셔츠와 스커트 자락이 뜬금없이 펄럭인다. 콜로세움의 창에는 액세서리와 화장품이 널려있다. 또 다른 그림에서는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의 여신 4명이 거대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그들이 파르테논 블록 쌓기를 하는 것 같다. 뉴욕현대미술관의 작업실, 그리고 그 안에서 일하는 여자가 오버랩 돼 있다. 갤러리 선콘템프러리에서 전시회를 갖고 있는 이지현(29)씨의 신작들이다. 한 화면 위에 뒤섞인 전혀 다른 두 공간이 흥미롭다.
“세계 유명 박물관과 유적지를 다니면서 ‘이 공간 안에 내 작업실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즐거운 상상을 했어요. 그 아이디어로 공간 혼합 작업을 시작했지요.”
그는 대학 시절부터 두 개의 다른 공간을 요리조리 엮어 제 3의 공간을 그림 속에 창조했다. 이번 전시회에 나온 작품에는 인상적이었던 여행지와 자신의 일상이 엉켜있다. 고대 건축과 개인의 옷장이라는 단순한 공간의 대비를 넘어 과거와 현재, 미술사적 의미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나의 틀 안에서 보여준다. 전시 제목도 서로 다른 음악을 섞어 새로운 음악을 만든다는 뜻에서 ‘매시 업(Mash-up)’이라고 붙였다.
이씨는 어릴 때부터 공간에 집착했다. 10년 동안 살던 집에서 이사를 나왔지만, 옛 집의 계단 현관 그리고 바닥에 깔린 카펫을 잊지 못해 그림 소재로 썼다. “제게는 공간의 의미가 커요. 언젠 가부터 제 아무리 유명하고 거대한 공간이라도, 제가 들어가 있는 순간만큼은 저의 일상으로 변해버린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게 참 흥미로웠지요. 역사적으로 중요한 세계 곳곳을 제 그림 속으로 끌어들여 완전 제 방식대로 표현해버리니까 통쾌하기도 하고요.” 이런 생각이 이전 작업에 비해 사적인 공간 비중이 커진 이유일지도 모른다. 극단적으로 확대된 그의 소지품은 자신의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내는 듯 하다. 전시는 7월16일까지.
조윤정기자 yj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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