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 공무원은 어떤 공직자보다 높은 도덕성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10일 퇴임하는 법원 내 최고참 공무원인 최덕립(71) 비서관은 법조 공무원의 최고 덕목으로 청렴성을 꼽았다.
1961년 검찰 공무원으로 발을 내딛은 이래 45년의 공직 생활을 곧 마감하는 최 비서관은 대법원에서는 ‘대법관의 그림자’로 불린다. 검찰 수사관 등으로 27년 동안 검찰에서 근무하다 1988년 김주한 대법관이 취임하면서 대법원 별정직 비서관으로 발탁된 이래 지창권 전 대법관, 강신욱 현 대법관까지 검찰 출신 대법관 3명을 18년 동안 차례로 보좌해온 이력 때문이다. 대법관 3명을 내리 보좌한 독특한 경력을 가진 비서관은 최씨가 유일하다.
나이만 따지고 보면 강 대법관보다 9세, 이용훈 대법원장보다도 7세가 많다. 그러나 최 비서관의 퇴임이 주목 받는 이유는 나이 때문만은 아니다. 법원 공무원들은 ‘칸트의 시계’라고 불릴 정도로 몸에 밴 그의 성실성을 두고 두고 곱씹게 될지 모른다.
대법관 집무실에는 수십~수백쪽 짜리 판결 자료가 매일 10건 이상 올라온다. 대법관과 재판 연구관들은 판결 내용을 검토하느라 정신이 없기 때문에 다른 업무는 비서관 몫이다. 송달이나 국선변호사 선임 여부 확인부터 판결 기록 정리ㆍ분류까지 할 일이 많아서 하루라도 거르면 자료가 산더미처럼 쌓이기 일쑤다.
판결문 오ㆍ탈자 확인은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한 자라도 틀리면 판결 전체에 불신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는 “목수 혼자서 집 한 채를 짓는 게 아니듯 판결 한 건도 대법관 혼자 완성하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사명감 때문에 최씨는 18년 동안 매일 저녁도 거르고 일을 해 왔다. 남들 식사하는 시간까지 일을 해야 업무를 완벽하게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항상 오후 9~11시 퇴근하기 때문에 직원들은 그의 퇴근 시간을 보고 시각을 가늠하곤 한다”고 설명했다. 부모님 제삿날을 제외하면 휴가도 간 적이 거의 없다. 대법관들은 틈만 나면 그에게 “건강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일하라”고 당부하지만 쇠귀에 경읽기다.
사건 관련자들의 전화 민원은 18년 동안 그를 가장 힘들게 했다. 양 당사자 중 패소 판결을 받은 쪽은 홧김에 항의성, 협박성 전화를 자주한다고 한다.
그는 “대법관께서 신경 쓸까 봐 통화 내용을 모두 전하지도 못한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대법관들이 일에 치이는 모습이 가장 안타까웠다고 한다. 자동차 접촉사고나 단순 절도사건까지 대법원에서 처리하는 경우를 보면 더욱 그렇다.
“친ㆍ인척 부탁인데도 변호사 한 번 소개 시켜준 적이 없어 ‘바보’라는 별명까지 붙었습니다.” 그의 그런 강직함이 새로 임명되는 대법관마다 퇴임하려는 그를 붙잡게 했다.
그는 사건 관계인에게 뇌물 청탁을 여러 차례 받았지만 거절했던 일화를 소개하면서 “퇴직 시에 지난 날을 떳떳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강 대법관 등 10일 물러나는 대법관 5명과 같이 퇴임식을 갖는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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