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1851~1895)가 1882년 임오군란 때 궁궐을 탈출해 충북 충주까지 피신한 과정을 기록한 피난 일기가 발견됐다.
대전시향토사료관이 30일 공개한 ‘임오유월일기’(壬午六月日記)는 임오군란 발생(6월 9일) 5일 후인 6월 13일부터 8월 1일까지 명성황후가 궁궐을 나와 서울, 여주, 장호원을 거쳐 충주까지 피신했던 51일간의 행적을 한자 붓글씨로 기록한 일기다. 대전시향토사료관은 5월초 명성황후의 피난 과정을 호종(扈從)한 민응식(閔應植)의 후손이 기증한 유물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가로 14.7㎝, 세로 20㎝ 크기에 8페이지 분량인 일기를 발견했다.
임오군란 당시 명성황후의 행적은 그동안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의 짧은 기록에만 의존해 인척인 민응식의 충주 집 등으로 피신했다는 내용만 알려져 있었는데, 이번 일기의 발견으로 명성황후의 피난 과정과 당시 정국 상황을 보다 상세히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기 내용 중에는 명성황후가 피난 중에 청(淸)에 군사를 요청했다는 지금까지의 학설과 달리 청의 군대가 조선에 들어왔을 때 붙인 방문(榜文)을 시종에게 적어오라고 명했다는 부분도 있어 역사학계의 반응이 주목된다. 7월 16일 일기는 ‘청나라 군사들이 내건 방문을 경성에서 어떤 사람이 베껴왔다’고 적고 있다.
또 임오유월일기에는 피신 당시의 날씨와 명성황후의 몸 상태, 식사내용, 이동경로, 시종자, 내왕자 등이 상세하게 적혀있다. 명성황후가 피난생활로 인한 피로 탓인지 목구멍 병과 다리 부스럼 병 등을 앓았다는 내용, 궁으로 서신을 보냈다는 내용 등도 기술돼있다. 6월 13일 일기의 경우‘6월 13일. 이경(二更ㆍ밤 9시~11시)쯤 중궁 전하께서 (서울)벽동 익찬 민응식의 집으로 가셨다. 인후 증세로 편찮으셨다.
박하유를 올렸다’라고 적고 있다. 6월 17일에는 ‘맑고 더웠다. 소나기가 왔다. 그대로 머무르셨다. 감길탕 한첩과 박하탕에 용뇌를 타서 올리니 드셨다. 다리 부스럼이 난 곳에 고름이 생겨 고약을 붙여 드렸다’고 적어 명성황후의 피난살이의 고통이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8월 1일 일기는 ‘아침 평진탕을 한첩 올렸다. 묘시에 움직이셔서 신원에 이르셨다. 군막에 머무시다 신시에 환궁하셨다’고 돼있다.
대전향토사료관 양승률 학예연구사는“내용으로 보아 명성황후를 호종한 민응식이 직접 기록했거나 그의 가까운 인척이 쓴 것일 가능성이 높다”며“명성황후의 피난 동정과 당시 정국상황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대전=허택회 기자 thhe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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