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3년간 제자리걸음하고 있는 국민연금 개혁과 관련,"더 내고 덜 받는 것 외엔 대안이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개혁안을 만든 분들과 토론해 보니 묘안이 있을 수 없더라"면서 "당장 개혁을 안 하면 미래의 재앙을 피할 수 없으니 국회에서 내달까지 결론을 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야3당을 순회하며 읍소했다. 김 장관이 차기 대권을 겨냥해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그런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그는 "담당 장관의 정상적 소임"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정확히 1년 전 언론들의 보도다. 김근태 장관을 유시민 장관으로, 3년간 제자리걸음을 4년간 제자리걸음으로, 내달까지를 연말까지로 고친다면 그대로 현재의 기사다. 차기 대권 운운하며 사족을 단 것까지 변함이 없다.
● 특수직연금 거론한 게 걸림돌
차이는 있다. '연금개혁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취임한 유 장관이 야심적으로 특수직연금 개혁을 들고 나온 것이다."올해밖에 기회가 없다. 국민의 희생을 요구하려면 문제가 더 큰 공무원연금을 먼저, 최소한 동시에 개혁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 말은 무르익어 가던 국민연금 논의에 오히려 찬물을 끼얹은 꼴이 됐다.
그의 선창이 여론의 공감을 얻자 핵심 당사자인 행정자치부가 입을 닫았다. 가타부타 말이 없다. 간간이 "연내 개정은 물리적으로 안 된다"거나 "자체 안을 궁리해 보자" 정도가 새나온다. 내부에선 연금 문제를 꺼내면'역적'으로 몰리는 분위기다. 부처를 조정하는 국무총리도 한 마디 언급이 없다. 청와대에선 "유 장관의 말이 심정적으로 맞다"는 사견 정도가 있다.
"화급하지만 지금은 누구도 서두르지 않는다. 정치적 이득이 없기 때문이다. 국민에게 조금 더 내고, 조금 덜 받자고 하면 동력이 생기겠는가. 정권 초기에 권력의 위세를 갖고 밀어붙이지 않으면 안 된다.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은 담당 장관뿐인데 그의 정치력에도 한계가 있다.
해낼 수만 있다면 박수를 받아야 한다."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던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며칠 전 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연금개혁이 현 정부에서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며, 성사 가능성에 대해"역사라는 게 가끔 우연에 의해서도 실현될 수 있으니까"라고 대답했다. 유 장관이 공무원연금 개혁을 꺼내든 것도'취임의 위세'가 남아 있던 시기였다.
여당이 담당 장관의 노력을 당랑지부(螳螂之斧)로 보고, 그 성사를 '우연의 역사'로 여기는데 연내 개혁이 어찌 가능하겠는가. 참여정부는 애초부터'더 내고 덜 받는' 연금개혁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2002년 대선 당시 TV토론회에서 노무현 후보는 이회창 후보가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은 더 내든지 받는 걸 깎든지 해야 한다"고 말하자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결국'연금 지급액을 급여액의 40% 정도로 깎아야 한다'는 주장인데, 기본적 발상이 잘못됐다.
연금이란 노후에 안정된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수지를 맞추기 위해 연금액을 깎아버린다면 연금제도가 아니라 용돈제도가 돼 버린다. 적어도 OECD 국가의 최소 수준인 50~70%정도는 돼야 한다. 넉넉할 땐 조금 더 축적하고 모자랄 땐 세금에서 조금 더 내고 이렇게 조절하는 것이다."
● 여권 의지가 사라진 건 아닌가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올해 안에 마무리하겠다는 유 장관의 장담이 공허하게 여겨지기 시작한다. 참여정부가 좀더 나은 연금제도를 만들려고 했으나 결국'더 내고 덜 받는' 수 밖에 묘안이 없다고 판단했고, 다행히 정부의 고육책에 국민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 거기엔 특수직역 개혁도 먼저든 동시든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전제돼 있다.
연금개혁을 지금 할 것인가, 미룰 것인가. 이제는 대답해야 한다. 먼저 행정자치부 장관이 입을 열어야 하고, 국무총리와 대통령이 답해야 한다. 권력의 위세를 가져야만 밀어붙일 수 있다고 하지만 여론과 기대는 오히려 지금을 적기로 보고 있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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