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을 앓던 독일의 시인 릴케(1875~1926)는 죽기 1년 전에 유언을 남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성당 묘지에 묻히되 묘비에는 자신의 이름, 가문의 문장 그리고 ‘장미, 순수한 모순 관능…’이라는 시 구절만 새겨지기를 바랐다. 이듬해 그를 찾아온 미모의 여인에게 장미를 꺾어주다 가시에 손을 찔렸는데, 상처가 곪아 패혈증으로 발전한다. 백혈병에 패혈증. 그러나 그는 진통제를 거부했다.
시인답게 죽기를 결심한 릴케는 진통제 때문에 정신이 흐려질까 두려웠던 것이다. 점차 현실로 다가오는 죽음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병세가 어떤지 담당 의사에게 한번도 묻지 않았다.
그는 “고통이 날 덮고 나 대신 들어앉아 있습니다. 밤낮으로요!”라는 편지를 쓴다. 죽기 사흘 전에는 의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들어오셨을 때, 제가 자고 있으면 말을 건네지 말아 주십시오. 대신 제 손을 꼭 잡아 주십시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시인의 죽음이 평범한 사람의 그것과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1828~1910)는 나이 여든을 넘기면서 죽음을 예견하고는, 일생의 대부분을 보낸 야스나 야폴랴나에서 조용히 최후를 맞기로 한다. 새벽에 몰래 집을 빠져 나와 열차에 올랐지만 심한 감기 때문에 중간에 내려 그곳 역장의 관사로 옮겨졌다. 수소문 끝에 찾아온 가족에게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나는 진리를 사랑해…아주 많이…나는 진리를 사랑해”였다.
독일의 서정시인 하이네(1797~1856)는 마지막 순간 “글, 글을 써야지. 종이, 연필…”이라고 말하더니 “정신이 희미해져. 이제 죽으려나 봐”라며 숨을 거두었다. 하이네는 죽음을 앞두고 “나는 아무것도 남기고 싶지 않아. 마치 자신이 걸어온 흔적을 지워버리는 도망자처럼”이라고 체념하듯 말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드레 줄을 이용, 침대에서 일어나 큰 종이 위에 글을 썼다.
그런가 하면 유대인 문화비평가 발터 벤야민(1892~1940)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나치를 피해 미국 망명을 시도하던 벤야민은 경유지인 스페인 국경을 넘지 못하고 게슈타포에게 넘겨질 위험에 처하자 목숨을 끊었다. 최후의 순간까지 지니고 있던 검은 가방에는 마지막 원고가 들어있었다.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먼 친척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찾아왔지만 끝내 무덤을 찾을 수 없었다.
‘죽음을 그리다’는 서양 작가와 사상가 등 23명의 마지막 순간을 통해 죽음의 얼굴을 드러낸 책이다. 프랑스의 문학평론가 미셸 슈나이더가 문인과 사상가들의 유언, 그들의 죽음에 대한 기록, 그들이 작품 속에서 묘사한 죽음 등을 종합했다.
볼테르와 톨스토이는 죽음의 공포에 시달렸고 츠바이크, 벤야민은 구차한 삶이 싫어 목숨을 끊었다. 모파상은 미쳐서 죽었고 체호프는 죽음 조차 문학으로 형상화하려 했다. 매일 새벽 4시55분에 일어나는 등 규칙적인 생활로 유명한 칸트도 죽기 전 몇 주 동안 스카프와 잠옷 허리띠를 묶었다 풀었다 하는 것을 반복했다.
책은 이들의 죽음을 찬미하지도, 영웅적으로 그리지도 않는다. 대신 그들이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였고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 보여주려 한다. 하지만 영웅이 된 문인의 죽음 혹은 그 죽음을 앞둔 그들의 태도에서 삶의 교훈을 얻으려 했다면 접는 게 좋겠다. 짤막한 글들이 그 같은 교훈을 다 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과 증언이 뒤섞이고 현실과 소설이 엉키면서 사실 파악이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래서 책은 유명 문인의 단순한 죽음 이야기에 머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박광희 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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