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영씨의 장편소설 ‘백수생활백서’(민음사, 9,500원)는 재미있게, 금세 읽히는 작품이다. 책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28살의 대졸 백수 ‘서연’, 좋은 집안에 머리 좋고 재주 많은, 하지만 매사 시큰둥한 친구 ‘유희’, 새로운 로맨스를 꿈꾸는 유부녀 친구 ‘채린’, 그리고 남자들의 이야기.
“우리 인생은 너무 짧”고 “싫은 일을 하면서 인생을 소비할 필요가 없”어 오직 책 읽는 데만 몰두하기 위해 아버지에게 얹혀 “쭉 빌어먹을 생각”을 품고 사는 열혈독자(讀者) 서연이 소설의 화자다. 하지만 소설의 진짜 주인공은 책(소설)이라 해도 좋겠다. 서연이 자신의 일상과 상념들을 이야기하며, 자신이 읽은 책의 구절들을 인용하는 형식의 반복으로 이어진다. 인용된 소설의 구절과 서연의 삶의 구절이 맞물리거나 엇갈리고, 또 서연의 독후감이 삶의 감상과 오버랩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상식의 가치들- 돈 외모 성공 연애 등에 대한 단상들이 짧은 호흡으로 불거졌다 가라앉기도 한다.
서사는 단순하고, 또 새롭다 할 무엇도 없지만, 그것을 책의 이야기로 짜깁기하듯 이어가는 솜씨는 인상적이다. 중언부언과 억지스러운 표현, 위태로운 문장들이 없지 않음에도 이 작품에 올해의 ‘오늘의 작가상’이 주어진 것은, 아마도 삶과 소설이 어떻게 닿아있고 또 어떻게 소설을 만나야 하는지를 느끼게 하기 때문인 듯 하다.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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