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남씨는 29일 기자회견에서 예상대로 북한의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김씨는 요코다 메구미씨와 관련된 각종 의혹들을 조목조목 부인했다.
이날 회견은 북한이 메구미씨 납치문제에 쏟아지는 국제사회, 특히 일본의 비난을 차단하기 위한 ‘홍보의 장(場)’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김씨는 회견 내내 “나와 나의 가정문제가 불순한 정치적 목적에 이용되는 것을 막아달라”며 일본을 겨냥했다.
■ 북한의 의도
김씨 회견은 남한과 일본을 분리해 대응하려는 북한의 의도를 반영하고 있었다. 납치도, 자진 월북도 아닌 ‘돌발적 입북’이라는 표현으로 남북 양측의 입장을 절충한 반면 일본에 대해서는 “정치적 이용을 하지 말라”는 비난으로 선을 그었다.
김씨의 회견 전부터 납북의 부인은 예상됐었다. 김씨는 그러나 자신의 입북을 ‘돌발적 상황’이라는 절묘한 표현으로 해명했다. 이는 납북자 실체를 인정하지 않았던 북한의 입장을 벗어나지도 않고, 아울러 ‘자진 월북’이라는 뻔한 강변으로 남측을 자극하는 우(愚)를 범하지도 않았다. 북한이 국제적으로 민감한 현안이 된 김씨 모자의 만남을 허용한 데는 나름대로 준비된 답안을 갖고 있었으며 나아가 이산가족의 틀 안에서 납북자 가족 상봉을 허용, 남측에 성의를 보이겠다는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와는 달리 일본인 납치피해자 메구미씨의 생존 가능성, 메구미씨 유골의 가짜 의혹 등에 대해선 김씨는 일축했다. 김씨는 메구미씨의 어릴 적 사고 후유증, 산후 우울증을 예시하며 사망을 거듭 밝혔고, 가짜 유골 의혹에 대해선 “모욕적이고 참을 수 없는 인권유린”이라고 반박했다.
이는 일본에 더 이상 납치자 문제에 대해 양보를 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자, 인권 문제로 압박을 가하는 국제사회에 대해서도 선을 긋겠다는 북한의 입장을 드러낸 것이다. 김씨가 “일본의 속셈은 북을 모략해서 좋게 발전하는 북남관계에 쐐기를 박고 불신 불화 대결을 조장하는 데 있다”고 비난한 데서도 북한의 분리 대응 의도가 읽혀진다.
■ 의문점과 전망
그러나 김씨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의문은 그대로다. 그가 밝힌 입북과정은 1997년 검거된 남파간첩 김광현씨가 “납치했다”고 밝힌 바 있어 짜맞춘 시나리오의 색채가 짙다. 나무쪽배에서 잠들었다가 공해상까지 떠내려가 북한 선박에 구조됐다는 것도 비상식적이다.
김씨는 메구미 생존설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반박 증거를 내놓지 않았다. 일본은 북한 당국이 메구미씨의 사망 시점을 93년에서 94년으로 정정하고, 94년까지 메구미씨와 같은 지역에 살았다는 납치피해자들의 증언을 제시하고 있다. 일본은 특히 딸 은경양이 메구미씨의 화장 사실을 몰랐다는 점도 말이 안 된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김씨의 회견이 납치문제를 둘러싼 북일간 갈등을 해소하진 못할 전망이다. 더욱이 북한 미사일문제까지 겹쳐있어 꼬일대로 꼬인 북일관계에 돌파구가 마련되기는 힘들 것 같다.
권혁범 기자 hb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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