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29일 청와대 만찬의 화두는 ‘조율’이었다.
그 동안 5ㆍ31 지방선거 참패 원인과 여권의 진로를 놓고 시각차이가 적잖이 노정됐다는 점 때문에 당청간 격론도 예상됐지만, 2시간30여분간 진행된 만찬의 초점은 노 대통령의 ‘포용’속에 상호 이견을 좁히는데 맞춰졌다. 현 상황에서 갈등이 다시 불거진다면 공멸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방선거 이후 첫 당청간 만남인 이날 만찬 초반에는 노 대통령이 화합의 분위기를 잡았다. 노 대통령은 “오늘은 여러분 이야기를 듣겠다. 당도 어렵고 나도 어렵지만 어려울 때는 지나온 날들을 돌이켜보면서 새롭게 용기를 내자”는 덕담으로 편안한 분위기를 유도했다.
하지만 우리당 김근태 의장이 가감 없는 당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시작하면서 긴장이 감돌았다. 김 의장은 “지방선거 결과는 예상보다 충격적”이라며 “당에서는 민심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고 정리를 했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노 대통령에게 “당을 좀 도와달라”고 한 뒤 “이럴 때일수록 당과 정부가 긴밀히 공조 협력해 책임정치를 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노 대통령은 “나도 선거 결과를 충격으로 받아들인다”며 “앞으로 국민의 소리를 경청하겠다”고 김 의장의 발언을 수용하는 자세를 취했다. 잠시 긴장했던 우리당 지도부도 이때부터 풀어지기 시작했다는 후문이다.
김 의장은 이어 “노 대통령이 탈당할 것이라는 설도 많이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달라”는 취지였다. 이에 대해서도 노 대통령은 “탈당은 절대 하지 않겠다. 당을 지키겠다”고 즉각 화답했다. 노 대통령은 특히 “당원들이 당에 대해 충성을 다해 줬으면 좋겠다”며 “나도 당에 많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부동산ㆍ세제와 관련, 당측에서 서민층의 부동산세 경감 요구가 쏟아지자 역시 전향적 태도를 보였다. 김 의장과 강봉균 정책위의장, 이석현 의원 등 많은 참석자가 “부동산 정책의 방향은 옳지만 중산층과 서민들이 부담으로 느끼는 부분에 대해선 고민을 해야 한다”고 민생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했다. 이에 노 대통령은 “투기 목적이 아닌 서민들에게 부담이 된 부분이 있다면 당정간 협의해서 정리해 나가시라”고 주문했다.
아울러 당청은 “한미 FTA는 생존과 발전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철저한 의견수렴을 통해 추진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고, 국방개혁법안과 사법개혁법안 등에 대해선 “조속한 처리에 노력하겠다”는 당의 다짐이 나왔다.
노 대통령은 만찬 말미에 “오늘은 제가 여러분의 의견을 큰 틀에서 수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당에 힘을 실어주겠다는 뜻을 다시금 분명히 한 셈이다. 우리당 우상호 대변인은 “당 지도부는 노 대통령이 수용하는 모습을 보면서 대통령을 이해하게 됐고, 만족하는 분위기에서 회동을 마쳤다”고 전했다.
정녹용 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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