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유난히 빠르다. 여름이 일찍 온 것 같다. 이미 서해안의 대부분 해수욕장이 문을 열었다. 슬슬 휴가를 이야기할 시기다.
바캉스의 1순위는 역시 바다다. 사람으로 들끓는 바다는 싫다. 넓은 바다로 나간다. 아무리 사람이 몰려도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넓다. 넉넉하고 평안한 휴가가 보장된다.
● 고래불해수욕장(경북 영덕군) tour.yd.go.kr
영덕은 참 먼 여행지였다. 수도권에서 가장 먼 10시간의 거리였다. 그런데 이제는 많이 바뀌었다. 영동고속도로와 직선화한 7번 국도를 연계하면 4시간대다. 고래불해수욕장은 영덕의 북쪽 끄트머리에 있다. 영덕읍에서 북방으로 24km를 중심으로 영해면 대진해수욕장과 이웃한 해수욕장이다.
울창한 송림에 에워싸여 있으며, 금빛모래는 굵고 몸에 붙지 않아 예로부터 이곳에서 찜질을 하면 심장 및 순환기 계통 질환에 효험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해변의 길이가 무려 20리다. 사람들이 아무리 모여도 한적하다.
‘고래불’ 이란 고려말의 학자 이색 선생이 붙인 이름이다. 해변 뒤는 상대산이다. 선생이 시를 읊으며 상대산에 올라갔다. 해수욕장 앞바다에 고래가 하얀 분수를 뿜으며 놀고 있는 모습을 보고 고래불 (‘불’은 뻘의 옛말)이라고 불렀다.
주변에 가볼 곳도 많다. 위정약수터와 고려말 명승 나옹선사가 창건한 장육사가 있다. 영해면 괴시리에는 고건축물이 산재해 있고, 해안도로를 따라 200년 이상 된 고가옥이 30여 동이나 있는 전통마을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도로와 해맞이공원도 빼놓아서는 안될 곳이다. 어느 곳이든 낚시를 드리우면 우럭, 학공치, 고등어, 돔 등이 심심찮게 낚인다.
● 대광해수욕장
섬에 들어있는 해수욕장이다. 이름부터 생소한 섬이다. 전남 신안군 임자도. 임자는 깨의 한자어. 한마디로 깨가 쏟아지는 섬이다. 비록 섬이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해변이 있다. 해변은 직선이 아니다. 이쪽 해변에서 저쪽 해변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구불구불하지만 왕복하려면 한나절이 걸린다.
길이만 긴 것이 아니라 폭도 만만치 않다. 물이 빠졌을 때의 폭이 300m나 된다. 얼마나 많은 인파가 모여야 북적거린다는 느낌이 들 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이런 천혜의 해수욕장이 지금껏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것은 목포에서 무려 6시간이나 걸리는 뱃길 때문이었다. 지금은 무안 해제∼신안 지도간 연륙교가 세워지고 지도읍 점암과 임자도를 왕래하는 철부선이 운항하면서, 승용차를 이요해 당일로도 다녀올 수 있는 가까운 코스가 됐다.
1990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대광해수욕장의 자랑은 넓은 백사장 뿐만 아니다. 완만한 경사와 적당한 수온, 넓은 야영장과 천연 잔디, 운동장, 체육시설, 샤워장, 주차장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목포와 광주 지역 대학생들의 M.T 및 운동선수의 전지훈련장으로도 사랑받는 곳이다.
해수욕장 앞으로 대태이도, 혈도, 어유미도, 바람막기도, 고깔섬, 육다리도, 오유미도 등 크고 작은 섬들이 떠있다. 농어, 돔, 장어, 민어 등이 잘 낚이는 낚시터들이다. 대광개발사업소(061)261-6524, 240-8880, 임자면사무소 275-3004.
● 구시포해수욕장
진흙 갯벌이 아니라 모래밭이다. 하얀 모래밭에는 티끌 하나 없다. 마치 사막 같다. 물이 촉촉하게 배어있는 젖은 사막이다. 길이는 그리 길지 않다. 대신 폭으로 승부한다. 썰물이면 해변의 폭이 1km가 넘는다.
구시포 해변은 크게 두 곳으로 나뉜다. 포구가 있는 길이 1㎞의 해수욕장과, 일부에 군사시설이 들어선 길이 4㎞의 너른 백사장이다. 너른 백사장은 명사십리로 불린다.
먼저 해수욕장. 양쪽으로 방파제가 들어서 있고 바다에는 가막도라는 바위 섬이 떠있다. 그 사이가 모두 모래밭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모래밭에 있다.‘귀족 조개’인 백합을 잡는 사람들이다. 백합은 깊은 모래에 살지 않는다. 기껏해야 10㎝ 정도의 모래 속에서 호흡을 한다. 쟁기처럼 생긴 모래 뒤지는 도구나 호미로 모래를 헤친다. 백합은 크고 무거운 조개. 한 마리 한 마리 찾을 때마다 마치 낚시에서 월척을 낚은 기분이다.
백합 뿐 아니다. 무심코 바라보면 보이지 않는다. 눈을 크게 뜨고 모래밭을 응시하면 작은 게들이 모래를 뒤덮고 있다. 사람이 발을 옮길 때마다 마치 철새떼가 군무를 하듯 흩어졌다 모인다. 여름의 생동감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명사십리로 자리를 옮긴다. 북쪽 방파제를 지나면 눈에 들어온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아니 서해안에도 이렇게 너른 해변이…’라며 놀란다. 명사십리 남쪽 끝에 해변으로 들어가는 모랫길이 있다. 차를 몰고 들어간다. 명사십리의 모래밭은 물이 빠지고 나면 단단하게 굳는다. 그래서 차가 다닐 수 있다. 파도를 바라보며 차를 달린다. 차선도, 신호등도, 제한 속도도 없는 길이다. 그러나 군사시설이 있어 아침 6시부터 저녁 8시까지만 출입할 수 있다.
해변에 차를 세울 때 주의할 점이 있다. 밀물 때다. 워낙 폭이 넓기 때문에 차를 세워놓은 곳 뒤로 물이 먼저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바다 쪽만 바라보고 여유를 부리다가는 물에 포위된다.
고창 여행은 바다 뿐 아니라 다양한 볼 거리가 함께 한다. 동백꽃 피는 선운사가 으뜸이다. 이달 말이면 붉은 꽃잎이 뚝뚝 떨어져 동백숲은 붉은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한 부처의 세계가 된다. 잘 정비된 고창읍성, 세계문화유산인 고인돌군, 문수사 등도 빼놓을 수 없다. 석정온천에서 피로를 풀며 여행을 마무리한다. 고창군 상하면사무소(063)563-0700.
글 사진 권오현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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