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후엔 중국이 한국이 하고 있는 일을 모두 대체할 것이다." 지난달 방한한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의 강연은 우리가 깊이 새겨들어야 할 충고로 한국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중국의 급속한 경제 발전에 놀라움과 경계를 넘어 공포심까지 갖는 사람이 많은 마당에 박정희식 개발독재의 싱가포르판을 성공시킨 인사의 언급인지라 무게가 더했다.
● 공자 부활의 아이러니
경제ㆍ산업적으로만 보면 이 예언은 그다지 비상식적이지 않다. 잘 나가는 중국에 대한 찬사는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세계 4위의 경제대국, 연평균 9~10% 성장, 한국ㆍ일본과의 기술력 격차 3~10년 등등. 그러나 과연 그럴까?
중국이 최근 공자 살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작년 3월 "조화가 중요하다"며 공자 말씀을 인용한 이후 중국 지도자들은 요즘 걸핏하면 공자 어록을 들먹인다고 한다. 공자 사상을 연구하는 학과나 연구소도 잇달아 설립되고 있다. 초등학교에서도 공자 배우기가 한창이다. 관영언론에서는 공자의 사상을'중화민족의 살아 숨쉬는 원천'으로 치켜세운다. 외국에는 공자학원을 보급하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라면 이렇게 정부가 나서서 특정 사상가를 띄우는 일은 불가능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자상을 때려부수며 공자를 봉건 구질서의 원흉이므로 타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바로 그 공산당이 하는 일이라니 아이러니다.
왜 공자 띄우기에 열을 올리는 걸까? "조화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면 공자가 다시 사는 수밖에 없다. 화해와 평화이념을 갖고 있으면서 흔들리는 체제를 안정시키며 통치의 권위를 보장해 주는 국가 경영의 화두가 필요하다. 바로 유교사상이다"(공산당 중앙당교 교수)라는 설명을 듣고 보면 그럭저럭 이해가 간다.
공자 사상이나 유교는 홍위병들이 주장했듯이 근대화 이전 사회의 계급질서를 강화하는 반동적 사상만도 아니고, 지금은 잊혀진 유교자본주의론이나 아시아적 가치론이 우겼듯이 동아시아 자본주의 성장의 원동력도 결코 아니지만, 엄연히 심화되고 있는 사회적 갈등과 문제를 잊게 해 줄 마취제는 더더구나 될 수 없다.
작년에 중국에서 발생한 집단 시위는 내무부 공식 집계로도 8만7,000건이다. 개혁ㆍ개방이 본격화된 1992년에 비해 9배 가까이 폭증한 수치다. 이러한 시위의 배경에는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극심한 빈부ㆍ도농 격차와 공산당도 걱정할 정도로 심각한 관료 부패, 민주적 의사 소통의 부재 등이 자리잡고 있다.
23만 6,000명의 억만장자가 있는 나라에 한 학기 3,900원의 학비가 없어서 학교에 못 가는 농촌 어린이가 공존하고 있다. 부자 살해ㆍ납치 사건이 잇따른다.
여기에다 한족, 티베트, 위구르, 몽골, 조선족까지 56개 민족을 뭉뚱그려 '중화민족'이라는 희귀한 민족을 창안해 내고, 티베트 몽골 위구르 만주 고구려 역사까지 원래부터 중국사였다는 식으로 견강부회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소수민족 일탈 문제는 폭탄의 뇌관이다.
● 빈부격차가 체제불안으로
중국 공산당이 일체의 정치적 민주화에 관해 논의조차 불허하고 인터넷에서도 민주주의, 자유, 인권 같은 문제를 논란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통제하는 것은 1989년 톈안먼 사태와 같은 민주화의 바람이 다시 불면 공산당 일당 독재 체제 하에서 억눌려 있던 사회적 불만과 소수민족의 독립 움직임이 본격화돼 거대 중국의 분열과 해체로 이어질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공산당 간부 양성 학교 교수가 말한 '흔들리는 체제'란 이런 내용까지를 포함한 중국의 맨얼굴이다.
자, 이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20년 후엔 중국은 한국이 하고 있는 일을 모두 대체할까? 독자분의 생각은 어떠신지?
필자의 생각은 크고 세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크고 센 것만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이광일 논설위원 kilee@h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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