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주인은 우리요”, “민족적 자긍심을 지키겠습니다”, “한 나라의 민족이 스스로 서겠다는 것이 그렇게 잘못입니까?”, “통일은 한민족의 숙원입니다”….
안타깝고도 놀랍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흥행 독주를 견제할 대작으로 많은 기대를 모아온 작품이기에 안타깝고, 서기 2006년에도 ‘대한늬우스’의 문법을 구사하는 이 영화가 관객 1,000만명 시대를 개막한 ‘흥행의 마술사’ 손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놀랍다.
사실(팩트)과 허구(픽션)를 혼융한 강우석 감독의 팩션영화 ‘한반도’는 일본의 역사 왜곡과 독도 영유권 주장이 야기한 분노를 원형질 삼아, 민족의식 고양이라는 하나의 목표만을 향해 거침없이 질주한다. 그러나 곁눈가리개를 쓴 경주마처럼 국가와 민족을 향해 돌진하는 ‘한반도’는 넘치는 프로파간다의 언술 속에 영화적 재미도, 주제에 대한 공감도, 인물에 대한 이입도 수몰시켜 버린 채, 낡고 진부한 이데올로기의 형해만을 남겼다.
가까운 미래의 어느날, 남북이 통일을 향한 첫 상징으로 끊어진 경의선을 완전 복원하고 철도 개통식을 갖는다. 그러나 일본은 1907년 체결한 대한제국과의 조약 문서를 들고 나와 경의선에 관한 모든 권한은 일본에 있다며 철도 개통을 불허한다. 대통령(안성기)은 조약내용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모든 기술과 자본을 철수시키겠다는 일본의 압박에 맞서 무력충돌도 불사할 태세지만, 국무총리(문성근)는 국가안보와 경제안정을 위해 일본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며 대통령과 대립한다.
영화 속 인물들은 “조약 문서에 찍힌 고종 황제의 국새가 가짜이며, 진짜 국새는 따로 숨겨져 있다”고 주장하는 재야 사학자 최민재(조재현)를 중심으로, 그에 동조하는 선과 그를 반대하는 악의 두 축으로 명료하게 분절된다. 숨겨진 진짜 국새를 찾아 조약의 원인무효를 입증하려는 대통령과 해군작전사령관(독고영재) 등이 최민재와 그를 돕는 도굴꾼(강신일)과 한 편을 이루고, 국가 평화와 안정을 위해 최민재를 제거하려는 국무총리와 국정원 서기관 이상현(차인표)이 야당총재(이승철) 등과 함께 ‘악의 축’을 구성한다.
‘프로파간다의 쓰나미’가 관객을 지치게 하지만, 민족주의라는 주제의 정치성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한반도’의 문제는 영화의 원형질을 이루는 일본에 대한 분노가 세공되지 않은 채 촌스럽고 거친 방식으로 드러난다는 점이다. 총리 일당이 대통령 독살을 시도하고, 국방부장관과 국정원장이 사학자의 국새 발굴을 돕기 위해 세종로 정부종합청사를 폭파하는 과격한 전개가 과연 관객과 주파수를 맞출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인물들도 선과 악을 불문하고 모두 평면적이라 ‘명배우들의 인해전술’도 별 효과를 내지 못했다. 국치일을 모르는 교양강좌 주부들에게 험담을 퍼붓는 최민재의 극악무도함은 그의 투철한 역사 의식보다는 캐릭터의 짜증스러움을 객석에 전이시키며, 악의 축에서 ‘선의 무리’로 좌표이동하는 이상현의 전향도 급작스럽고 생뚱맞다. 강 감독에게 극찬을 받은 차인표는 여전히 연기의 강약 조절이 안 되고, 문성근의 연기톤은 아직도 ‘이것이 알고 싶다’의 진행자 같다.
순제작비 96억원 중 미술과 컴퓨터그래픽에만 40억원을 쏟아부은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폭파 장면과 일본 자위대의 동해상 출격 장면 등도 이야기의 조악함과 공감 못할 캐릭터로 인해 빛을 발하지 못한다.
영화로 일본을 들이받아보고 싶었다는 감독은 이 소망 충족의 서사로 속이 시원할지 몰라도, 카타르시스를 기대하며 극장을 찾은 관객에게 2시간 30분 간의 ‘의식화 교육’은 갑갑하기만 할 따름이다. 7월13일 개봉. 15세.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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