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완 대통령 비서실장이 또 신문에 나왔다. 이번에도 역시 강연 때문이다. 많은 언론이 주목한 대목은 이렇다. "(노무현 대통령 정권이) 인기가 왜 없냐? 솔직히 말하면 재미없는 정권이기 때문이다. 경제는 잘 하고 있다. 그런데 민생은 만족스럽게 하지를 못하고 있다. 민생이 고달픈 것은 1997년 외환 위기가 가져온 후유증 때문이며, 환란 이후 구조적 문제는 참여정부 3년 안에 해결할 수 없고, 세종대왕이 와도 불가능한 일이다."
■ 솔직함을 넘어 무모하고, 과장을 지나쳐 황당한 표현은 차치하고, 걸핏하면 강연입네 특강입네 하며 뉴스메이커가 되는 것이 '대통령의 국정 수행을 보좌하는 비서실의 사무를 처리하며 소속 공무원을 지휘ㆍ감독하는'(대통령령 19308호) 비서실장이 할 일일까?
대통령이 워낙 말씀을 좋아하시니 차마 다 하지 못한 자잘한 이야기를 대신 하는 것인가? 하기야 장관급 실장의 강연이 아니라도 비서실에는 칼럼니스트 천지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전ㆍ현직 비서관 20명의 칼럼이 고정 코너로 올라 있다. 비서들이 왜 이리 제 말이 많을까 싶지만 글솜씨만큼은 누구한테 빠지지 않는다.
■ 역대 비서실장 가운데는 이후락씨나 박지원씨처럼 유명한 이가 적지 않다. 그러나 유명할수록 본인의 말로도 좋지 않고, 대통령을 위기에 빠뜨렸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팀의 선임자로서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고, 수석비서관과 비서관들을 조직해 대통령과 각료나 다른 중요 인사들과의 가교 역할을 하고, 정부 내 정책 갈등을 해소하고 합의를 형성하는 조정자 내지 중개자 역할을 담당"(함성득 고려대 교수의 '대통령 비서실장론'에서 인용)해야 하는 본연의 직무에서 벗어날수록 유명해진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 '럼드펠드 원칙'이라는 게 있다. 도널드 럼스펠드 미국 국방장관이 백악관 비서실장 등을 지낸 경험을 토대로 공직자의 자세를 경구 식으로 기록한 메모다. 비서실장에 대해 논한 구절을 보자. "세상을 '우리'와 '그들'로 나누지 말라. 분노를 참기 어려울지라도 언론, 의회, 정적에 집착하지 말라. 대통령에게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날카롭게 짖어댈 수' 있어야 한다.
그럴 용기가 없다면 그 자리를 수락하지도, 머물러 있지도 말라."조선왕조에서 왜 비서실장(도승지)의 직급을 장관(판서)보다 두 단계 아래인 차관보급(정3품)으로 했고, 왜 600년 역사에 비서실장이나 비서관(승지)으로 이름을 떨친 사람이 없는지 잘 생각해 보기 바란다.
이광일 논설위원 ki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