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대학을 갓 졸업한 남자 쌍둥이가 같은 직장에 취직했다. 둘 다 기획부서에 배치 받았고 근무시간, 월급도 똑같다. 입사 당시 신체검사에서 별다른 이상징후도 없었다. 다만 한명은 정규직이고, 다른 한명은 비정규직이다. 3년 뒤 이들이 건강검진을 받는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학력과 소득 등 사회경제적 지위는 물론, 노동환경이 같더라도 비정규직이 정규직에 비해 건강상태가 더 나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또 일반적인 통념과는 달리 남성이 여성보다 더 건강하며, 직업별로는 전문직과 사무직이 서비스직, 단순노무직, 농어민보다 건강이 더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광역시 거주자가 서울과 경기, 기타 도지역보다 더 건강했다.
한국일보 기획취재팀이 고려대 사회학과 김문조 교수팀과 함께 1998년부터 2004년까지 매년 전국의 성인 남녀 1만여 명을 추적 조사한 한국노동연구원의 노동패널 자료를 분석한 결과, 외환위기 이후 고용 불안에 노출된 비정규직이 급증하면서 건강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가장 최근인 2004년 자료를 분석해 보면 20세 이상 정규직 가운데 자신의 건강상태를 ‘좋다’ 또는 ‘매우 좋다’로 평가한 비율은 67.7%인 반면, 비정규직은 그 비율이 54.5%에 머물렀다. 특히 50세 이상 대졸자로 한정한 경우엔 건강하다고 답한 정규직(61.6%) 비율이 비정규직(36.4%)에 비해 2배나 높았다.
남녀간 건강 차이도 분명했다. 남성의 56.5%가 건강하다고 답한 반면, 여성은 그 비율이 44%에 그쳤다. 이 같은 건강 격차는 비정규직에서 더욱 두드러져 50세 이상 정규직은 남녀간 차이가 4%포인트인데 비해, 비정규직은 8%포인트나 됐다.
지역별로는 광역시(63.2%) 거주자가 건강이 가장 좋았고, 기타 도지역(57.7%), 서울(52.9%), 경기(41.9%) 등의 순이었다. 직업별로는 사무직(66.8%), 기술직(66.7%), 전문직(64.3%)의 건강상태가 서비스직(51.6%), 단순노무직(48.4%), 농어업(40.5%) 종사자보다 훨씬 양호했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가 노동유연성 확보를 위해 비정규직을 늘려가는 추세이지만, 비정규직이라는 노동시장 내 지위 자체가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을 감안할 때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더 들어갈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고려대 김문조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건강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며 “고용 안정성은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핵심 조건인 만큼, 노동유연성과 그에 따른 사회적 건강비용 간 손익을 정밀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기획취재팀= 안형영기자 new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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