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과 진실왜곡 간의 다툼은 인류의 언어생활과 동시에 시작됐을 것이다. 중국 전국시대(기원전 403~221년)에 세 사람이 호랑이 만들어낸 이야기- '삼인성호(三人成虎)'는 현대의 언론과 관련해서도 쓰디쓴 비유가 되고 있다. 위나라 혜왕과 신하 방공 간의 대화다. 방공이 태자와 함께 조나라에 인질로 떠나기 직전이다.
"어떤 사람이 지금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누가 그 말을 믿겠소?" "그럼 두 사람이 똑 같이 호랑이가 나왔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의심해 볼 것 같소." "세 사람이 똑 같은 소리를 한다면 그 때는 어쩌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아마 믿을 것이오." 방공이 묻기를 멈추고 본심을 아뢴다.
"전하, 지금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올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그러나 세 사람이 똑 같은 말을 한다면, 그것이 사실이 됩니다. 제가 가 있게 될 곳과 이 곳의 거리는 저잣거리보다 멀고, 저를 참언하는 자 역시 세 사람보다 많을 것입니다. 원컨대 밝게 살피소서."
● 보수에 편중된 한국 언론
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불행하게도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방공이 떠나자 참언하는 자가 생겨났고, 결국 왕은 의심을 하게 되었다. 후에 태자는 인질에서 풀려났으나, 방공은 왕을 만날 수 없었다. 세 사람의 말이 인간 분별심의 한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 고사는 언로가 한 쪽으로 편중돼 있을 때 맞게 되는 부조리와 폐해를 깨우쳐 주는 귀중한 잠언이다.
유월의 언론계에 평소와 다른 긴장이 흐르고 있다. 최근 동아ㆍ조선투위 등 13개 언론단체가 언론탄압진상규명협의회를 결성하여 언론사 바로 세우기에 들어갔다.
국회에서도 '해방 이후 언론탄압에 대한 진상규명 및 피해자 배상에 관한 특별법'이 추진되고 있다. 언제나 독재 정권 아래서는 탄압에 신음하는 다수의 언론인이 있어 왔다. 언론이 언론계의 부당한 과거사를 광정하는 데 마땅히 앞장서야 함에도 불구하고, 언론 스스로 바로 서지 못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지난해 언론의 다양성을 보호하기 위해 신문법이 제정되었다. 그러나 동아ㆍ조선일보는 곧바로 헌법재판소에 신문법 위헌소송을 냈고 역시 보수신문인 중앙일보가 이에 동조하는 가운데, 29일 그 판결이 내려질 예정이다. 신문법에서 특히 관심을 끄는 부분은 시장점유율이 큰 신문사에 대한 지원을 배제하고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한 규정과, 신문사의 경영정보를 공개하도록 의무화한 조항이다.
신문법이 헌법 정신에 위배되는가를 짚어 보기 전에, 현재 일선에서 언론 상황을 체감하고 있는 기자들이 신문법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들여다보자.
4월 한국언론재단의 신문ㆍ방송ㆍ통신사 기자 311명에 대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신문시장에서 시장지배적 사업자를 지정한 조항에 대해 찬성이 58%, 반대가 39%였다. 신문사 경영자료 신고 조항에 대해서도 찬성 66%, 반대 30%였다. 압도적인 수의 기자들이 현 신문법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거센 신자유주의적 물결 속에, 언론의 다원주의 보호가 각국의 주요 관심사가 되어 있다. 프랑스 신문법은 한 신문사의 30% 이상의 점유율을 제한하고 있다.
프랑스 헌법위원회는 신문법이 독점방지와 여론 다원주의 원칙에서 합헌이라고 판결한 바 있다. 또 프랑스 경제사회이사회는 거대자본의 유입으로 신문이 위기에 놓여 있어 국가지원을 체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냈다. 이탈리아 또한 신문시장의 20% 이상인 시장지배자를 규제하고 있다.
● 헌재 판결이 민주주의 좌우
보수신문이 거대 자본을 앞세워 신문고시를 어겨가며 신문시장을 독과점한 지금은 언론의 위기이며, 그 위기는 민주주의의 위기다. 지금은 또한 헌재의 판결로 그 위기가 극복될 것인가, 고착될 것인가를 기다리는 초조한 시간이다. 하여, 위나라 방공처럼 청한다. 헌재가 밝게 살펴주기를.
박래부 수석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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