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사회의 '우리끼리'가 40일도 안 돼 무너졌다. 사상 최초로 조총련 본부를 전격 방문, 화해를 성사시킨 민단 하병옥 단장의 화해 백지화 선언은 구성원의 생활감각과 동떨어진 정치적 요구에 의해 결정된 행동방침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확인시켰다.
재일동포 사회에서 남북한을 각각 대표하는 민단과 조총련의 화해는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그 의미는 어디까지나 상징성에 그친다. 재일동포 사회가 이미 그 단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흔히 재일동포 사회를 '또 다른 분단 상황'이라고 하지만 구체적 실상과는 거리가 있는 말이다. 여전한 정치조직인 조총련이나, 그런 색채를 완전히 씻지 못한 민단 등 조직 중심의 시각에서는 분단이 거론되고 있지만, 재일동포 개개인의 실생활에서 분단 상황은 거의 해소돼 있다. 또 그 방향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한국과 일본 사회 공통의 가치관을 향해 왔다.
이런 가운데 민단 지도부는 충분한 내부 의사수렴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조총련과의 화해를 서둘러 추진했다. 또 화해의 전제조건으로 탈북자 지원 등 재일동포 사회의 당면 관심사를 억지로 배제하려고 했다. 그것이 반작용을 불러 지도부 퇴진론까지 낳았다.
민단 지도부가 뼈저리게 느꼈겠지만, 이번 사태는 두 가지를 분명히 일깨웠다. 첫째는 재일동포 사회의 민주화 요구가 과거와 민족의 틀에 가둘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는 점이다. 둘째는 같은 '민족 화해' 요구라도 실생활과 동떨어진 상징 조작 차원의 행위가 되어서는 더 이상 통용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재일동포 화해라는 추상적 구호를 앞세우기 위해 북한 주민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탈북자 지원을 포기하겠다는 발상은 정치감각에는 맞을지 몰라도 생활감각과는 거리가 멀다. 남북 공통의 행복 추구라는 목적이 왜 화해라는 수단에 밀려야 하는가. 이번 화해 백지화 선언이 대북 이벤트에 매달리고 있는 국내 정치인들에게 던지는 메시지 또한 바로 이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