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이하 현) 태극아 이번 월드컵 때 너무 수고 많았어. 길거리와 텔레비전 화면에는 태극기가 넘쳐났고 ‘태극 전사’ ‘태극호’라는 말도 수백 번은 더 들은 것 같아. 우리 한국이 16강에 들지 못해서 서운하기는 하지만 말야.
태극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비행기를 탄 사람도 있고 월세 보증금을 빼서 여비를 마련한 사람도 있다고 들었어. 독일에까지 가서 응원한 사람들 중에는 노숙을 하면서 하루에 빵 한 개로 버틴 사람도 있었다던데.
현 거리 응원도 대단했지. 하지만 아쉬운 것도 있어. 공중파 3개사가 같은 경기를 같은 시간에 중계하는 바람에 다른 프로그램은 방영되지 못했잖아. 독일의 경우 개최국이지만 하루에 한 방송사만 월드컵 중계를 했다더라. 그래서 지난 24일에는 중계 방송사가 프랑스-토고 경기를 방영하기로 결정해서 독일 교민들이 한국-스위스 경기를 보지 못했대.
태극 독일이 선진국이라는 게 거기서 드러나는 거겠지. 문화적 다양성이 중시되니까 말이야. 월드컵 축구 경기 말고도 다른 것을 문화적으로 선호하는 사람들의 권리가 존중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획일적이기보다는 문화적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가 더 문화적으로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어.
현 그런 취지에서 한국의 월드컵 응원 열기에 대해 너무 획일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는 거로구나.
태극 그런 측면도 없는 건 아니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해. 월드컵 열기가 뜨거운 것은 한국 사람들이 평소에 놀 기회가 없기 때문인 거야. 다른 나라의 카니발처럼 광적으로 놀 수 있는 기회가 없고, 또 놀 만한 장소, 그러니까 그럴듯한 광장이 없기 때문이지. 흔히 하는 말로 국민적 축제가 없는 거지. 특히 젊은 세대들은 놀 준비가 되어있는데 말이야.
현 하지만 2002년부터 태극기를 길거리 패션에 이용하기 시작한 것만 해도 혁명적인 변화라고 생각해. 그 만큼 정치적 권위주의와 문화적 엄숙주의가 깨진 거 아니겠니? 이제 태극기는 옷 대신 몸을 가리는 것이기도 하고, 또 거꾸로 일부 젊은 여성들에게서는 몸을 노출시키는 수단이 되기도 하니까.
태극 거리 응원에서 젊은 여성들의 노출이 심하다는 얘기는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현 그거야 자기 맘 아냐? 나는 그것보다도 백 수십만 국민이 한 날 한 시에 길거리에 나가는 게 문제라고 봐. 게다가 언론에서는 그걸 다시 과장해서 보도하지. “한국의 거리 응원 세계가 놀랐다”는 식으로 말이야. 그것 외에는 평소에 억눌린 에너지를 표출할 수 없다는 걸 뜻하기도 하니까 말이야. 4년에 한 번謗?허용되지 않는 거잖아. 그러고 보니까 월드컵이 매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
태극 한국의 거리 응원에 대해 세계가 놀랐다는 것은 응원 방식이 획일주의적이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어. 그런 의미에서 일사불란하다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니까.
현 거리 응원이 끝나고 쓰레기를 치우는 것도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보기가 좋은 일이지만, “세계가 보고 있으니까 쓰레기를 치웁시다”라는 얘기는 너무 계몽적으로 들릴 수도 있어.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가 흩어진 자리에 쓰레기가 남는 게 더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는 거겠지. 평소에 우리는 규격 봉투를 이용하지 않고 쓰레기를 많이 버리잖아. 특히 남의 집 앞에 말이야. 만약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거라면, 월드컵 때가 아니어도, 그리고 세계가 보고 있지 않아도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지 말아야지. 반면에, 프랑스 파리에 가보면 파리 시민들은 세계 도처에서 온 관광객들이 보는 앞에서도 쓰레기를 길거리에 팍팍 버리더라. 청소 하는 분들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식으로 해석될 수도 있고…. 아무튼 프랑스 사람들은 그게 자기네의 독특한 문화인 거야. 그것을 유치원생 수준에서 획일적으로 비난하는 것이야말로 우스운 일이지. 스위스 전에서의 오프사이드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니?
태극 결국 우리 책임이지. 오프사이드다 아니다 하는 것은 결국 경기의 주심이 결정하는 것이고 선심이 깃발을 들었어도 주심이 휘슬을 불지 않는 한 선수들은 플레이를 계속해야 한다는 게 기본 룰이니까. 주심은 주심 나름대로 판단의 근거가 있는 것이고, 설령 그게 우리 눈에 오심으로 보인다 하더라도 그냥 넘어가는 게 현명해. FIFA가 한국에서의 인터넷 접근을 막을 정도로 항의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
현 여기서 언론의 역할이 중요한데 대부분의 한국 언론은 속상한 국민들 옆에서 부채질 하는 격이야. 중계 방송하는 아나운서나 해설자는 그렇다고 치고 종이 신문은 냉정해질 필요가 있는데 말이야. 2002년에는 거꾸로 이탈리아 국민들이 심판의 오심에 대해 아주 거센 항의를 했었지. 이번 월드컵은 독일에서 열린 거니까 어쨌거나 스위스가 그만큼 더 어드밴티지를 가질 수밖에 없는 거고. “오심도 경기의 일부다”라는 얘기가 맞는 거 같아.
태극 어쨌든 간에 아시아 출전국 중에서 우리나라만이 유일하게 1승을 거둔 거잖아. 월드컵 16강도 중요하겠지만, 월드컵 기간 동안에 터진 다른 사건들에도 주목해야 해.
현 예컨대 학교 급식 문제를 말하는 거로구나. 우리나라보다 못사는 나라도 의무교육 과정에서는 학교 급식을 국가 예산에서 전액을 부담하는 나라가 많단다. 우리나라는 말로만 의무교육일 뿐이지. 실제로 학부모들이 급식비를 내고 있으니까 엄밀하게 말해서 의무교육이라고 할 수 없어. 게다가 이번에는 식중독 사건까지 터졌지. 그것도 굴지의 재벌 그룹이 대주주인 회사에서 제공한 급식이 문제가 되었잖아.
태극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 문제도 아직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어. 그러니까 월드컵 때의 바로 그 마음자세로 이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나가야 해. 태극 문양에서처럼 일상과 축제가 서로 적절하게 맞물리며 돌아가야지.
문화비평가 이재현
■ 태극
대한민국 국기인 태극기의 가운데 도형이 나타내고 있는 우주론적 원리 혹은 범주. 태극은 만물의 근원 및 우주의 생성원리를 표상하는 이념이다.
태극 이념을 다이어그램에서 출발하여 설명하고 있는 문헌 중에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중국 송나라 주돈이의 ‘태극도설’인데, 주돈이는 ‘주역’의 ‘계사’에 나오는, “역(易)에 태극이 있는데 태극이 양의를 낳고 양의가 사상을 낳고 사상이 팔괘를 낳았다”는 구절을 우주론적으로 발전시켰다.
‘태극도설’의 우주론은 송대 성리학을 집성한 주자에게 사상적 토대를 부여하였으며, 우리나라 퇴계의 ‘성학십도’도 ‘태극도’에서 시작한다. 우주의 생성원리로서 태극 이념은 도가의 근본 이념, 즉 노자의 ‘도’ 및 장자의 ‘태일’(太一)과 비교될 수 있다. 중국 청나라의 고증학자들 일부는 주돈이의 태극도가 도교 도사들이 만든 역도(易圖)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태극도 중에 우리 태극기의 태극 문양과 대동소이한 것이 있다. ‘음양어(陰陽漁) 태극도’라고 불리는 것이 그것인데, 흑백의 곡옥(曲玉) 두 개가 서로 맞물려 있는 형태로 이루어진 음양어 태극도는 고대로부터 중국 도교의 상징물 중의 하나였다. 이 태극도의 모양새를 중국에서 물고기 형태로 파악하여 음양어 태극도라고 부른 것이다. 음양어 태극도의 특징은 물고기의 눈 부분에 해당하는 두 개의 작은 점이다. 음 속에 양이 있고 양 속에 음이 있으며, 음과 양이 서로 상호작용한다는 것을 다시금 강조한 형태로 풀이된다. 전세계의 국기 중에 태극 문양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한국의 태극기와 몽고의 국기다. 몽고의 국기는 음양어 태극 문양을 이용한다.
우리 전통적인 태극 문양에는 이태극 이외에도 삼태극을 찾아볼 수 있다. 서오능과 비원의 돌계단에 삼태극 문양이 나타나며 일상적으로는 대부분의 태극선이 삼태극 문양을 사용한다. 삼태극은 통상적으로 삼재 사상과 연관되는 것으로 이해되는데, 특히 삼태극의 원류를 동북방 샤머니즘에서 찾는 학자도 있다. 우리 전통 사회에서 태극 문양은 무덤, 사당, 문묘, 능묘 등의 건축물, 민화와 무속화 등의 그림, 자수, 장신구, 떡살, 반짓고리 등의 공예품, 그리고 좌고 등의 악기에서 아주 일상적으로 활용되어 왔다. 전통적인 태극 문양은 사랑, 행복, 장수 등을 기원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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