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가 끝나 아쉽지만 이제 일상에 전념해야죠.”
24일 스위스전 석패로 독일 월드컵 16강 진출이 좌절되면서 4,800만 국민을 모처럼 하나로 만들었던 감동의 드라마가 막을 내렸다. 거리를 가득 메운 붉은 물결과 대지를 뒤흔든 ‘대~한민국’ 함성에 아직 가슴이 떨려오지만 많은 시민들은 이제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고 있다.
보름간의 추억을 뒤로 하고
회사원 전지원(32)씨는 “경제도 어렵고 우울한 소식들만 많았는데 한국팀의 경기를 보면서 잠시나마 시름을 잊었던 것 같다”며 “2002년을 떠올리며 6월 밤을 지새웠던 감동의 시간이 앞으로 생활하는데 활력소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월드컵은 새로운 다짐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취업준비생 최모(29)씨는 “한국팀 경기가 있는 날 만큼은 붉은 옷을 입고 친구들과 어울려 목이 터져라 응원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며 “그 동안 취업문제로 주눅 들어 있었지만 이번 월드컵을 즐기면서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16강 진출을 철썩 같이 믿었던 축구팬들은 허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대학생 박모(26)씨는 “기말고사를 마치고 이제 본격적으로 응원전에 나설 참이었는데 이렇게 끝나버려 허무하다”며 “4년 후를 기약한다고는 하지만 너무 멀게만 느껴질 뿐”이라고 아쉬워했다.
일부에서는 월드컵 열기에 가려졌던 서러움을 토로했다. 지난 달 말부터 시각장애인들의 생존권 보장 시위를 벌여 온 대한안마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지영관 부위원장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함께 응원하는 것이 당연했지만 졸지에 우리의 주장은 완전히 묻혔다”며 “세상에는 축구 말고도 절박한 문제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편파판정에 분통 터뜨려
월드컵의 열기는 식었지만 스위스전 오심 논란으로 인터넷은 후끈 달아올랐다. 500만명이 국제축구연맹(FIFA)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면 재경기가 가능하다는 정체불명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24일 급속히 퍼지는 바람에 네티즌들의 접속이 폭주해 FIFA와 대한축구협회 인터넷 사이트는 이틀째 접속 불능상태가 지속됐다. 아이디 ‘zlzmsdl’인 네티즌은 “심판 판정 때문에 복장이 터지고 가슴 한구석이 울컥하는 기분에 하루종일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건사고 잇따라
한국 대표팀의 16강 진출 실패로 마지막 거리 응원이 된 24일 오전 5시10분께 서울 중구 정동 덕수궁 부근에서 거리 응원을 하던 대학생 김모(25)씨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경찰은 유족 진술 등을 토대로 일단 김씨가 심장마비로 숨진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인을 조사 중이다.
경기 결과에 불만을 품은 김모(44)씨가 112로 전화를 걸어 “스위스 대사관이 어디냐. 폭파시키겠다”고 협박했다가 경찰에 붙잡히는 소동도 벌어졌다.
인천 문학경기장과 전주 금암동 종합운동장에서는 경기 종료 후 그라운드로 뛰어 내리거나 급히 나가려다 넘어지는 사고로 16명이 다쳐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성추행, 폭력도 있었다. 경찰은 서울광장에서 김모(24ㆍ여)씨의 허벅지를 만진 최모(32)씨,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청계광장에서 응원을 마치고 귀가하던 우모(17)군과 김모(23)씨를 때린 김모(41)씨 등 1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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