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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박준동 교수 '낮엔 의사 밤엔 모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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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박준동 교수 '낮엔 의사 밤엔 모금인'

입력
2006.06.26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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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환자를 위해 치료비를 기부할 1004명을 찾는 길이라면 어떤 어려움도 마다 않겠습니다.”서울대 어린이병원 소아과 의사이자 서울대 어린이병원후원회 사무국장인 박준동 (43)교수는 요즘 ‘천사’를 찾느라 분주하다. 꺼져가는 생명에 희망을 찾아주기 위해 그가 기획한 ‘사랑의 기부 릴레이 1004’에 동참할 기부자들이 곧 천사들이다.

박 교수는 “최저 200만원을 기준으로 삼아 최초 기부자가 다른 기부자를 소개하는 식으로 사랑의 릴레이를 이어갈 작정”이라며 “지금 첫 테이프를 끊을 천사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돈 많은 기업’을 골라 찾아 다니는 의사이다. 언뜻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는 병동에서 환자의 상태를 살피는 것 못지않게 기업을 찾아 다니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더 많은 기부금이 더 많은 어린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부모가 이혼한 뒤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사는 14살짜리 남자 어린이가 골수염에 걸려 한달 동안 입원을 해야 하는데 병원비가 300만원 가까이 나옵니다. 조부모는 한달 수입이 20만~25만원 정도고, 무책임한 애 아버지는 ‘애를 내다 버리라’고 고함칩니다. 고작 300만원에 병원도 매정하게 ‘입원이 어렵겠네요’라고 말해야 합니까?”

박 교수는 “보통 아이들이 중환자실에 입원할 경우 치료비는 금새 2,000만원을 넘긴다”며 “병원비 때문에 집을 팔거나 사채를 끌어 쓰고 카드 돌려막기를 하다가 결국 부모 한쪽이 도망가버려 가정이 깨지는 사례가 숱하다”고 안타까워 했다.

서울대 어린이병원 후원회가 만들어진 것은 2001년이다. 그러나 교수들이 돈을 내거나 주변 지인의 도움을 받는 식으로 운영되니 한해 기부금이 1억원을 넘지 못했다. 이렇게 지지부진하자 젊은 교수들 중심으로 본격적인 모금 활동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왔고, 지난해 9월 후원회 사무국이 결성돼 박 교수가 직접 뛰기로 됐다. 모금 없이는 어린이병원이 만성적인 적자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 만큼 어린 환자들을 살릴 수 없다는 절박한 현실이 ‘평생 의사’박 교수를 의도의 길로 내몰았다.

어린 환자는 어른에 비해 인력과 치료 시간이 몇 배로 더 들기 때문에 어린이병원의 적자는 구조적 고질병이다. 서울대 어린이병원의 경우 2004년 120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누적적자가 1,000억원이나 된다. 그 결과로 최신 치료법이나 진단 기계의 도입은 대부분의 어린이 병원에는 꿈 같은 얘기일 뿐이다. 새 기계 구입 얘기를 꺼내면 어른병원(본원)으로부터 “돈 도 못 버는 주제에…”라는 구박만 받기 일쑤라는 게 어린이 병원 의사들의 고백이다.

박 교수는 “미국, 영국 등 선진국의 어린이병원도 대부분 만성적자에 시달리지만 사회공헌을 앞세우는 독지가들의 기부금이 많아 우리와는 사정이 다르다”며 “선진국들은 의사와 직원들의 월급까지 기부금에서 충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우리에게도 희망의 싹이 움트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가 후원회 사무국장을 맡아 의사 체면을 접고 기업체를 찾아 다닌 지 1년도 안돼 40억원의 후원금이 쌓였다. KT&G 가 20억원을 약속하고 도미노피자, 유닉스 전자 등 중견 기업들이 기부 대열에 앞장섰다. 병원에서 청진기만 붙잡고 안타까워했으면 꿈도 못 꿨을 성과다.

내 친 김에 ‘기부 릴레이 1004’를 통해 100억원을 추가로 모으겠다는 게 박 교수의 야심찬 계획이다. 하지만 시작부터 쉽지는 않다. 접촉한 여러 중소기업들이 최초 기부자가 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이제 시작인데 여기에서 포기하겠습니까”라며 “어린이 환자들을 위해 낮엔 의사로 일하고 밤에는 모금인으로 변신할 각오가 돼 있다”고 말했다.

고주희기자 orwe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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