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분명 황제는 아니었다. 자리에서 펄쩍 뛰고 괴성을 지르는 모습은 여전히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와 같았다.
22일 아르헨티나와 네덜란드의 빅매치가 열린 프랑크푸르트 발트슈타디온의 VIP관람석. 아르헨티나의 악동(惡童) 디에고 마라도나의 모습은 먼 발치에서도 두드러져 보였다. 그는 독일 월드컵 조직위원장 인 프란츠 베켄바우어와 프랑스의 미셸 플라티니 곁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각각 황제와 장군이라는 별명을 가진 베켄바우어와 플라티니는 검은 양복에 다소 보수적인 넥타이 차림으로 근엄하게 앉아 귀빈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마라도나는 자신의 등 번호 10번이 아로새겨진 하늘색 줄무늬의 아르헨티나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뿐 아니라 아르헨티나 응원단과 똑 같은 긴 수건을 손에 감고 연신 흔들어댔다.
아르헨티나 국가를 부를 때도, 열광적인 응원을 보낼 때도 그는 아르헨티나 응원석과 호흡을 같이했다. 아르헨티나 관중들도 선수들의 플레이에 아쉬움과 탄성을 보내듯이, 마라도나의 몸짓 하나하나를 지켜보며 즐겼다.
마라도나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신기의 드리블과 폭발적인 스피드로 축구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영웅이다. 하지만 그 후의 삶은 영광보다는 상처가 많았다. 마약복용과 총기 난사 사건 등 엽기적 행각을 벌이는가 하면 한때 극심한 비만으로 폐인이 됐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국제축구계에서도 언제나 주변인으로 머물러 있어야 했다. 펠레는 장관을 지냈고, 베켄바우어와 플라티니는 각각 대표팀 감독에 월드컵조직위원장이라는 화려한 길을 걸었지만 마라도나는 투옥되는가 하면 수용시설에 갇히기까지 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 그는 여전히 축구 신동이다. 도리어 그들의 애환과 기쁨을 모두 이해하는 유일한 영웅이다. 그는 이날 아르헨티나 응원단의 지휘자와 같았다. 후계자로 지목한 리켈메가 아쉽게 골을 놓치자, 관중들은 마라도나의 표정을 보며 탄식을 했다. VIP들 사이에서 열띤 응원을 하는 그의 모습에서, 관중들은 조그마한 체구로 유럽의 내노라는 플레이어를 제치던 그날을 회상했다.
축구의 영웅 가운데에도 베켄바우어와 같은 황제계보가 있는가 하면, 마라도나와 같은 민중의 영웅이 있다. 그러나 이날 VIP석의 어느 누구도 마라도나 만큼 국민에게 뜨거운 열정을 느끼게 해주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프랑크푸르트(독일)=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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