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 사이에 우스갯소리로 정신과 의사는 병원 차리는데 책상 하나, 의자 두 개 그리고 볼펜 한 자루만 있으면 되니 돈이 적게 들어 좋겠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정신과에서는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 상담이기 때문에 나오는 말이겠지요.
그런데 처음 정신과를 찾은 환자들에게는 간혹 당혹스러운 일이 생깁니다. 상담을 하러 병원에 갔더니 뜻밖의 검사들을 하라고 하기 때문이지요. 생각했던 것과 달라 마음이 불편하기도 하고, 꼭 해야하는 검사인지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혹은 병원에서 시키니까 무슨 검사인지 내용도 모른 채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현재 정신과 진료에는 다양한 검사가 도입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치료에 꼭 필요하고 유용한 검사들입니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게 되면 자세히 들을 기회가 있겠으나, 대략 어떤 검사들이 있는지 미리 알고 있는 것도 좋겠다 싶습니다.
거의 예외 없이 필수적으로 시행되는 검사로 ‘심리검사’가 있습니다. 지능검사, 인성검사 등 매우 다양한 검사로 구성되어 심리적인 측면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검사입니다. 어른, 아이를 막론하고 환자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정신과 검사로서는 가장 포괄적이고 유용한 검사입니다.
심리검사는 임상심리전문가에 의해 검사와 판독이 시행되는 것으로 검사 결과가 전문적인 용어와 개념으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환자들이 충분히 이해하도록 설명하기는 어려운 경우가 많지만 정신과 의사에게는 환자 평가와 치료에 적용할 수 있는 더없이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줍니다.
‘신경인지기능검사’ 또는 ‘신경심리검사’라는 것도 있습니다. 이것은 뇌신경의 활동을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인지기능, 즉, 기억력, 주의집중력, 시공간구성능력 등을 양적으로 측정하는 객관적인 검사입니다. 요즘에는 대부분의 검사가 전산화되어 컴퓨터로 검사를 받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검사는 치매나 뇌손상 환자들의 증상의 정도를 객관적으로 측정하여 치료계획을 수립하는 데 필수적이며, 치료 후에 어떠한 정도로 호전 또는 악화되었는지를 평가할 수 있는 유용한 검사입니다. 정신병이나 우울증에서도 인지기능의 특징적인 저하가 나타나기 때문에 이들의 진단과 평가에도 도움이 됩니다.
‘뇌파검사’, ‘수면다원검사’, ‘바이오피드백검사’ 등은 신경생리학적 검사에 속합니다. 생리적 신호를 측정하여 수치화 하거나 영상화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진단을 내리고 증상의 정도를 평가하는 것입니다. 신경생리학적인 검사들은 모두 전산화되어 있고, 디지털화된 자료들을 분석하는 방법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어, 이것으로 알아낼 수 있는 추가적인 정보에 대한 가능성은 무한히 열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뇌파검사로는 간질, 뇌손상 뿐 아니라 전산화된 분석 기법으로 뇌 지도를 작성하여 정신분열병,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의 진단과 치료 효과의 평가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수면다원검사는 불면증, 수면무호흡증 등 각종 수면장애의 진단과 상태 평가를 위해서는 반드시 시행해야 하는 검사입니다. 바이오피드백검사는 자율신경계 기능을 평가하여 노이로제 및 신경성 신체증상들을 평가할 뿐 아니라 이들을 치료하는데도 매우 효과적인 도구입니다.
뇌자기공명영상(MRI) 뇌전산화단층촬영(CT) 등의 뇌영상검사 역시 정신과에서 매우 중요한 검사입니다. 정신증상을 나타내는 원인 질환들 중에는 이러한 뇌영상검사로 진단하여 치료가 가능한 원인을 찾아내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혈액검사와 요검사, 심전도 같은 기본적 검사들은 정신과 환자들에게도 예외 없이 중요합니다. 당뇨, 갑상선질환 등 우울증이나 불안증의 원인이 되는 신체 질환이 이러한 기본적 선별 검사를 통해 발견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기 때문입니다. 또한 약을 복용하게 되는 경우 간이나 신장, 심장 등 건강 상태를 미리 확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상담만 하면 될 것 같은 정신과에서도 다양한 검사들을 통해 보다 정확한 진단과 평가, 그리고 치료 계획을 수립하여 더 전문적인 진료를 가능하게 하고 있습니다. 다만, 꼭 필요한 검사를 시행해야 하겠고 이 때 의사는 자세히 설명하고 환자는 충분히 이해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교수 윤세창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