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서울시장은 이 달 말 4년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다. 이 시장은 21일 오후 집무실에서 가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차기 대선의 초점은 누가 경제를 살릴 수 있느냐가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CEO 출신으로 국회의원과 서울시장을 거쳐 차기 대선주자로 또 다른 도전을 시작하는 이 시장을 만나 향후 구상과 행보 등을 들어봤다.
_4년 임기 중 가장 보람있는 일을 꼽으라면.
“일반인과 외국인들은 청계천을 가장 손꼽는데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노숙자들을 재기하게 한 일이 기억에 남는다. 근래 노숙자 1,000명 정도를 일을 시켜 봤다. 자원봉사자 300명을 시켜 노숙자들을 매일 면담케 했고, 여기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을 골랐다. 이들을 1명, 3명, 5명씩 나눠 서비스업종이나 건설회사에 취직 시켰다.
일당으로 5만원을 줬는데 절반은 서울시가 부담했다. 우리은행에 부탁해서 이들의 예금 이율을 2배로 해주었다. 이들이 1,000만원을 예금하면 한 달에 5만원만 내고 살 수 있는 임대아파트를 들어가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지금 500만~600만원 저금한 사람이 생겼고 500여명의 노숙자들이 임대아파트 입주를 신청했다. 하루라도 빨리 저금해서 흩어진 가족을 찾겠다는 의지가 대단하다. 그들이 희망을 찾는 모습에서 보람을 느꼈다.”
_노숙자 재기 프로그램에서 좀더 큰 틀의 사회 양극화 해법도 찾았는지.
“일자리를 잃은 40, 50대 가장들은 뭐든 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 그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보조금도 주면 정부도 좋고 기업도 좋다. 경제가 어려워져 많은 사람들이 해고되고 있다. 그들을 구하는 방법은 일자리를 주는 것이다. 이런 생산적 복지가 양극화의 해법이 될 수 있다.”
_부동산 문제도 서민들에게 절박한 테마인데.
“부동산 문제가 한번의 정책으로 해결된 경우는 세계적으로 없다. 일관된 정책이 필요하다. 2003년 10월23일에 마련한 1차 부동산 대책을 꾸준히 유지했어야 했다. 강북에 뉴타운을 개발, 좋은 학교를 배정하면 강남북 균형을 맞출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대책을 계속 유지했으면 적어도 강남으로 이사 가려던 흐름을 막았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계획을 바꿔서 송파 신도시 등을 만든다고 해서 오히려 기대치가 강남쪽으로 쏠리게 됐다.”
_부동산 가격을 잡기위해 정부는 세금정책을 쓰고 있다.
“지금의 조세정책은 너무 과격하다. 선의의 거주자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다. 투기자만 찾아 과세해야 한다. 조세정책은 여러 방법 중 하나에 불과한데 그것만 가지고 부동산 정책을 펴니까 과격한 내용이 나오게 됐다.”
_4년 임기 중 가장 힘들었을 때는.
“교통시스템을 바꿨을 때 적잖은 혼란이 있었다. 정치적 공격도 있었다. 시 공무원들이 매일 밤을 새워 보완책을 마련했다. 그 때 고생한 사람들에게 정말 미안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시스템을 수출할 정도로 호평을 받고 있다. 외국의 세계적인 기업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자에게 당부를 한다면.
“앞으로 서울은 문화, 환경도시로 가야 한다. 마침 오 당선자가 그 쪽에 관심이 많아 거기에 맞는 정책을 잘 펴나갈 것이다.”
_인수위원장에 최열 환경연합 대표를 인선한 것을 놓고 보수층이 비판하는데.
“나도 지난 4년간 최열 씨와 환경문제를 놓고 토론을 많이 했다. 아마 오 당선자도 이념이나 사상적 문제를 떠나 환경 문제만 생각했던 것 같다.”
_퇴임 후 일정은.
“우선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고향으로 내려가 그간 못 만났던 지인들을 볼 생각이다. 이후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과 만나 애환을 듣겠다. 농업에 기업경영 기법을 도입하겠다고 연락을 해온 충청지역에도 내려갈 생각이다. 체험의 기회를 가져보려고 한다.”
_한나라당의 복귀시기는.
“내년 초쯤 복귀하지 않겠느냐. 당분간 정치활동은 하지 않고 보람있는 시간을 보내는데 주력하겠다.”
_자택과 사무실은 정했는가.
“연락사무소는 필요할 것 같아 서울 종로구 견지동 서흥빌딩에 마련했다. 집은 한옥보존지구인 종로구 가회동 북촌마을로 정했다.”
_7월11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어떤 인물이 대표로 뽑혀야 한다고 보나.
“좀 개혁적이어야 할 것이다. 보수당, 부자당, 영남당 등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이미지여야 한다. 또한 여당이 대선을 앞두고 개헌이다 뭐다 정치적 활용을 하려 할텐데, 그걸 견제할 수 있는 야성(野性)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지난 대선의 김대업 사건같은 공작정치를 막을 수 있는 뱃심, 야성, 개혁성을 골고루 갖춰야 한다.”
_이재오 원내대표를 염두에 둔 것인지.
“국민 여망이 그렇다는 것이지 특정인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_이재오 원내대표는 이 시장 사람이라 중립성에 문제가 있다는 시각도 있는데.
“당 대표에 누가 되도 중립성을 지킨다. 그건 걱정 안 해도 된다. 더 큰 문제는 국민이 당 대표를 보고 당의 이미지를 연관시킨다는 점이다.”
_소장파에서 개혁적인 젊은 후보를 독자적으로 내겠다고 하는데.
“열린우리당에서도 소장파들이 그랬는데 그 정도였다. 그러나 뭔가 새로워지려는 노력이니까 당의 이미지에는 좋을 것이다. 선택은 당원들이 하는 거다.”
_한 인터뷰에서 대선 180일 전에 대선후보를 뽑는 게 이르다는 언급을 한 적이 있는데.
“나는 6개월 전에 뽑는지도 몰랐다. 시기가 이르냐, 늦냐를 얘기하기보다는 여당에서 누가 나오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 후보만 드러난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문제는 당의 결정을 따라가면 된다.”
_한미 FTA 협상을 놓고 논란이 많다.
“원칙적으로 우리같이 대외의존도가 70%나 되는 나라는 FTA 등 대외지향적 노선을 택해야 한다. 다만 한국과 미국은 경제 규모가 차이나고 경제논리를 적용할 수 없는 특수 상황이 있다. 농업분야 같은 것이다. 예외를 인정, 상당한 유예기간을 둬야 한다. 그 기간에 농업이 자생력을 갖도록 해야 한다.”
_경제 살리기에 대한 복안은 있는지.
“예전에는 미국과 일본 경제가 좋으면 우리도 좋았다. 지금은 이들 국가는 좋은데 우리만 안 좋다. 이는 국내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 이유는 현 정권이 기업에 신뢰를 못 주기 때문이다. 지금 기업들은 투자를 안 한다. 투자를 해도 해외에 한다. 기업들이 투자하게 해야 한다.”
_기업인들이 왜 투자를 꺼리는가.
“기업들은 현 정권을 편하게 느끼지 않는다. 위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 내에 기업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우리가 살길은 투자를 활발하게 해서 내수가 살고, 그러면 일자리 생기고, 서민들이 산다. 그래서 정권이 바뀌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_한 인터뷰에서 ‘대선후보 경선보다 정권교체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건 혹시 내가 경선에 불복하고 새로운 당을 하나 만들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지금 국민이 바라는 것은 정권교체다. 한나라당이 그에 부합하지 않는 행동을 하면 국민이 실망해서 기회를 안줄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_신당을 창당해 정권교체를 하는 방식도 거론되는데.
“국민은 한나라당이 단합해서 정권교체를 하기를 바라고 있다. 당을 만들었다 깼다하는 것은 전근대적이고 후진적이다. 3김 시대나 가능했다. 지금은 정책으로 국민 동의를 얻고, 국민으로부터 외면을 받고 하는 식이다. 사람이 싫어서 당을 깨고, 탈당이나 창당을 하는 것은 후진적인 정치다. 국민은 이미 선진적인 사고를 하고 있다.”
_다른 분이 한나라당 후보가 되도 나라를 잘 이끌 거라고 생각하나.
“사람들이 그걸 자꾸 묻는다. 나는 아직 대선 출마 선언도 안 했는데… 그렇지만 내 나름대로 ‘이렇게 하면 나라를 살릴 수가 있는데 저 사람이 하면 과연 해낼 수 있는가’라는 생각을 한다. 대선은 국민의 선택이다. 우리는 많은 실패를 딛고 선진화를 이뤄냈다. 많은 경험을 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모두가 현명한 선택을 할 걸로 본다. 지금 우리 삶은 절박하다. 절박한 국민이 선택할 길이 있지 않겠나.”
_다음 대선에서 여야는 무엇을 내놓고 싸울 것이라고 보는지.
“여당은 남북문제, 헌법개정 같은 걸 내놓겠지만 국민이 원하는 것은 경제 살리기다. 경제를 잘 살려서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서민이 살 수 있게끔 하는 게 더 절박한 문제다.”
_한나라당의 지방선거 압승을 진단한다면.
“제일 큰 이유는 집권여당의 실정이었다. 대부분 유권자들은 야당 후보가 누구냐고 묻기보다는 여당 후보 아닌 사람을 찍었다.”
_이 시장이 “한나라당이 잘해서 이겼다”고 말했다는 보도도 있다.
“잘못 전해진 것이다. 대한민국 4,000만에게 물어봐라. 한나라당이 잘 해서 이겼다고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와전된 것이다.”
_여론조사의 지지율이 조금 떨어져 고건 전 총리, 박근혜 대표에 이어 3위인데.
“내 지지율은 빠진 것은 아니고 그 분들이 올랐다. 나는 정치인이 아니라서 이벤트나 행사가 없어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지 않는다.”
인터뷰=이영성 부국장대우 정치부장 정리=염영남기자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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