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이 결국 연기됐다.
김 전 대통령 방북을 위한 남북 실무접촉 남측 수석대표인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21일 “돌출상황 때문에 지난 5월 합의됐던 6월말 방북이 사실상 어렵게 됐다”고 밝혔다. 돌출상황은 북한의 대포동 2호 미사일 발사실험 준비다. 정 전 장관은 “미사일 국면이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현재로서는 그 부분을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남북은 지난달 2차례의 실무접촉 끝에 27일부터 3박4일간 육로를 통해 방북한다는 원칙에 의견 접근을 이뤘다. 이후 남측은 김 전 대통령의 건강문제를 고려, 열차 방북을 희망한다는 의사를 전달했으나 북측은 3차 실무접촉에 응하지 않았다.
특히 방북 1주일 전에는 선발대와 의료진이 평양에 들어가야 하는데 북측은 답변이 없었다. 여기에 북한의 미사일 발사 준비상황까지 겹쳐 한반도 정세가 요동치면서 김 전 대통령과 정부는 방북 연기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정 전 장관은 “북측의 방북 연기 통보는 없었지만 행간을 읽어볼 때 방북이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가는 쪽이나 초청한 쪽 모두 불편한 상황에서 방북을 강행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물론 미사일 문제 이전부터 북측은 방북에 미온적이었다. 김 전 대통령이 방북할 경우 초청자인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나 6자회담 복귀를 설득할 게 분명하다. 하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의 압박에 굴복하는 모양새를 수용하기 힘들다. 정부 당국자는 “김 전 대통령에게 건네줄 선물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북측이 미적거렸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결정에 가장 낙담하는 쪽은 김 전 대통령이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2004년 6월 이후 김 위원장의 방북 초청을 3차례 받은 뒤 “방북은 민족을 위한 마지막 봉사”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1주일에 2~3차례 3~4시간 가까이 신장 투석을 해야 하는 악조건 속에서도 운동과 정세토론 등으로 만반의 준비를 해왔다. 장시간의 차량 탑승에 필요한 체력 비축을 위해 몸 관리를 했고 6자회담, 북한 핵문제, 남북관계 등에 대한 토론도 매일 했다. 방북이 연기되자 김 전 대통령은 “북한과 일을 하려면 힘든 때도 있다”고 아쉬워했다고 한다.
물론 방북이 완전히 물 건너간 것은 아니다. 정 전 장관은 “방북 초청은 여전히 유효하고 김 전 대통령도 여러 준비를 많이 해왔기 때문에 다음 실무접촉 날짜를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단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고 경색국면이 해소되면 방북 분위기는 조성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이 고령인 만큼 7~8월 무더위에 방북하기는 힘들고 9월초가 방북에 적당한 시기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다만 이처럼 큰 행사가 한 번 연기된 만큼 다시 불을 지피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는 회의적인 전망도 있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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