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이군경 부문 손태혁씨
지역 유공자 집에 사비로 문패 달아
대한민국상이군경회 광진구 지회장인 손씨는 한국전쟁 당시 강원 금화지구 전투에 참가했다 전신에 파편을 맞아 왼쪽 눈까지 실명했다. 상이 4급 판정을 받고 전역한 손씨는 신체적 역경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하다 은퇴 이후에는 상이군경회를 위해 헌신적인 봉사를 하고있다.
손씨는 1954년 전역 직후부터 상이군경회를 위해 봉사했다. 당시 거주지인 전북 군산시 옥구군에서 연합분회장을 맡아 지역회원들의 복리증진을 위해 군산극장을 인수, 수익금으로 불우회원 돕기 등에 나선 것. 이후 대한통운에 입사, 27년간 남원지점장과 목포지점 차장, 본부 감사부 차장을 지냈다.
91년에는 성동구 지회장으로 다시 상이군경회에 복귀했다. 성동구의 분구로 광진구가 생기면서 손씨는 광진구의 초대지회장을 맡았다. 새로 생긴 지회라서 보훈회관 건립이 절실하자 손씨는 사재까지 털어가며 3년 동안 불철주야로 뛰다녔다. 손씨의 노력으로 1997년 드디어 각종 물리치료실과 사우나 등 복지시설을 갖춘 지하1층, 지상5층의 초현대식 보훈회관이 빛을 보게됐다.
손씨는 관내 400여 회원들의 위상제고를 위해 국가유공자의 집마다 문패를 다는 사업도 시작했다. 예산부족으로 사업이 차질을 빚을 위기에 처하자 손씨는 200여만원의 사비를 선뜻 내놓았으며 관할 구청을 찾아가 문패가 달린 유공자의 집에 대해서는 특별히 예우와 관리를 부탁하기도 했다.
광진구 보훈회관의 전쟁기념 전시장에는 관내 보훈가족들의 군번과 성명을 기록한 초대형 명패가 전시돼 있다. 후손들에게 나라사랑 정신을 깨우치기 위해 제작한 것으로 이 사업에도 손씨는 400여만원의 사비를 쾌척했다.
▦ 상이군경 부문 정진태(鄭鎭泰ㆍ79)씨
참점경험담 교육 충혼탑건립 헌신
충남 홍성군 금마면 죽림리가 고향인 정씨는 한국전쟁 당시 경북 군위 전투에서 양측 대퇴부에 총상을 입고 전역한 뒤 지금까지 줄곧 고향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84년부터는 상이군경회 홍성군지회장을 맡아 보훈회관을 마련하고 국가유공자들의 공적을 기리는 충훈탑을 건립하는 한편 팔순 고령에도 불구하고 호국보훈의 달에는 각급 학교를 다니며 참전경험담을 들려주는 수고를 아끼지 않고 있다.
전상을 입은 정씨는 후송된 병원에서 천주교 수녀의 극진한 간호에 감명받아 천주교 신자가 됐다. 전역한 뒤에도 신앙심을 잃지 않은 정씨는 고향으로 돌아와 천주교 죽림공소회장을 맡아 가톨릭의 불모지인 시골에 공소를 설립했으며 교회부지를 천주교 대전교구에 헌납, 대전교구장의 표창을 받기도 했다.
72년부터 4년 동안은 새마을지도자로 활동하면서 마을회관을 건립하고 지붕개량, 담장정비 사업도 추진했다. 정씨는 전기불이 없던 마을을 위해 한국전력 영업소를 3개월 동안 끈질기게 찾아 다닌 끝에 마을 50여 호에 전기불을 밝히는 데도 성공했다.
84년 상이군경회 홍성군지회장에 임명된 정씨는 유공자 선양사업에 팔을 걷어붙였다. 먼저 군청 소유의 20여평의 건물을 무상임대받아 보훈회관을 마련했으며 군청이 발주하는 유료주차장 운영권을 따내 호국단체의 살림살이에도 기여했다.
지회장으로서 가장 공을 들인 사업은 충혼탑 건립. 후세에 호국보훈의 정신을 계승하는데 충혼탑만한 기념물이 없다고 생각한 정씨는 각계각층에 호소, 2,000여만원의 성금을 마련한 끝에 93년 관내 유공자와 전몰군경 700명의 위한 충혼탑을 세울 수 있었다.
▦ 미망인 부문 김복순(金福順ㆍ70)씨
바느질로 가정 꾸리며 봉사활동 솔선
전상군경과 결혼한 김씨는 24년간 남편의 병수발을 들며 한복 바느질로 억척스럽게 가정을 꾸려왔다. 93년부터는 전몰군경미망인회 목포시지회장을 맡아 유가족은 물론 불우이웃 돕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김씨가 한국전쟁에서 왼팔과 다리에 총상과 파편상을 입고 전역한 남편을 만난 것은 1958년. 생활능력이 없는 남편 대신 가정을 꾸려가야 했던 김씨는 한복 바느질로 생계를 이어가는 한편 남편의 병수발에 시어머니 봉양까지 혼자서 3, 4인의 역할을 해냈다. 김씨의 헌신적인 병수발에도 불구하고 상이용사 남편은 20여년 만에 유명을 달리했고 김씨는 이 때부터 미망인회 활동으로 남편의 빈자리를 채워나갔다.
93년 목포시지회장을 맡은 김씨는 절미운동부터 벌이기 시작했다. 어렵게 지내던 시절에 그래도 힘이 되고 의지할 수 있었던 게 절약과 근검이었기 때문이다. 절미운동으로 확보한 성금은 전액 불우한 회원 돕기에 쓰고 남은 돈은 장학금으로 쾌척하기도 했다.
김씨는 지회장으로서 회원 구호사업뿐 아니라 불우이웃 돕기활동도 활발히 벌이고 있다. 지금까지 500여만원 상당의 위문품을 양로원에 전달했고 관내 독거노인을 모시고 식사를 대접하는 일에도 소홀함이 없다. 한 달에 두번 씩 회원들과 함께 현충탑 주변을 청소하는 일도 지금껏 거른 적이 없다.
▦ 유족ㆍ유자녀 부문 김창석(金昌錫ㆍ55)씨
아버지 충혼 생각하며 '더불어 삶' 실천
김씨는 한국전쟁에서 아버지를 잃은 전몰군경 유자녀지만 어려운 가정환경을 극복하고 출판업으로 자수성가, 전쟁 유자녀들의 모범이 되고있다. 대학교재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홍익출판사 대표인 김씨는 사회봉사 활동에도 솔선수범하고 있다.
김씨가 2살 때 아버지가 전사하는 바람에 기억 속의 아버지는 언제나 빈자리였다. 고향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김씨는 대구로 올라가 출판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직장을 다니는 틈틈이 방송통신대학 과정을 수료하는 노력과 출판사 직원으로 터득한 노하우로 김씨는 20년 전 직접 출판사를 차렸다. 탄탄한 내실을 다져온 출판사는 어느덧 중견기업으로 성장해 있다. 김씨는 “인생의 고비마다 역경을 이겨낸 원동력은 나라를 위해 목숨까지 바친 아버지의 충혼”이라고 말했다.
출판사로 입지를 굳힌 김씨는 장애인과 독거노인에 연탄을 지원하고 경로잔치를 벌이는 등 불우이웃 돕기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있다. 최근에는 강원도의 오지마을인 도암면 눈마을 도서실에 매년 수백권의 도서를 기증하고 있다. 매년 봄ㆍ가을에는 출판사 직원들과 함께 경북 북부지역의 농촌으로 나가 농민들의 바쁜 일손도 거들어 주고 있다. 대구시 중구 삼덕동 주민들을 위한 교양강좌를 개설하는 등 지역발전을 위한 지원에도 아낌이 없다.
▦ 중상이자 처 부문 신계향(申桂香ㆍ72)씨
몸 불편한 남편의 40년 인생동지로
이웃의 소개로 처음 남편을 만났을 때 신씨는 무서운 생각부터 들었다고 했다. 한국전쟁에 참전해 인제지구 전투에서 적이 던진 수류탄에 양쪽 눈을 잃고 왼손가락마저 일부 절단된 모습에 질겁하고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 하지만 남편의 끈질긴 구애와 따스하고 인정넘치는 목소리에 반해 상이군인 남편을 받아들였고 40여년이 지난 지금 남편은 둘도 없는 동반자가 됐다.
상이군인 남편의 아내로 살아가는 것은 고역 그 자체였다. 전쟁의 상처로 심신이 피폐해진 남편을 어루만지는 한편 생계를 잇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생선 채소 과일행상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대구 칠성시장 노점에서 멸치장사와 비누장사를 하면서 그런대로 자리를 잡았고 74년에는 보훈청의 대부금으로 작지만 내집까지 마련할 수 있었다. “이제는 가구업을 하는 두 아들과 함께 남부러울 것 없는 단란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 동안의 역경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다”며 신씨는 말끝을 흐렸다.
젊은 시절 고생으로 신씨는 크고 작은 병치레가 잦다. 몇 년 전에는 척추디스크 수술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남편과 함께 해로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든든하다는 신씨. 지난 날의 어려움도 이제는 추억일 뿐이며 장애인 남편을 돌보는 것이 마지막 낙이라고 했다.
▲ 심사평/ 심사위원장 대한민국재향군인회 손병익 사무총장
의로운 삶 애국혼에 찡한 감동
보훈의 참뜻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신명을 바치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위훈을 기리고 그 유가족을 위로하며, 그 분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기억하고, 선양하여 국가발전의 정신적 에너지로 결집시키는데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을 감안할 때 한국일보사가 제정하여 33회를 맞는 '한국보훈대상'은 온 국민들에게 보훈의 참뜻을 널리 알리는 메신저로서, 그리고 유가족과 상이용사들의 자긍심을 복돋아 우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생각한다.
필자를 비롯한 3명의 심사위원들은 이와 같이 뜻 깊은 '한국보훈대상' 수상자 선발을 주관했다는 데 크나큰 보람을 느꼈으며, 한편으로는 5개 부문 후보 36명의 공적 증빙서류 내용을 접했을 때 이 분들의 의로운 삶과 나라사랑 정신에 옷깃을 여미었다.
수상자 여러분의 숭고한 삶에 경의를 표하며, 가정에 행운이 가득하기를 빈다. 아울러 보훈정신 선양에 앞장서 온 한국일보와 국가보훈처, KT&G에도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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