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의 줄거리를 요약하는 것은 부질없다. 회사에서 실직한 날 아파트는 폐기처분 되고, 여자 친구의 외도 장면까지 목격한 억수로 운 나쁜 사나이 슬레븐(조시 하트넷). LA에서의 꽈배기 같은 인생에서 벗어나고자 친구인 닉 피셔가 있는 뉴욕으로 옮겨 오지만, 닉은 이미 실종됐고 닉으로 오인된 슬레븐이 뉴욕 양대 마피아의 수장, 보스(모건 프리먼)와 랍비(벤 킹슬리)에게 끌려가 살인 지령을 받는다. 악명 높은 암살자 굿캣(브루스 윌리스)은 그에게서 감시의 눈길을 떼지 않고, 닉의 앞집에 사는 엉뚱하고 귀여운 린지(루시 리우)와는 서서히 사랑이 무르익는다. 이게 다 무슨 소리?
일체의 개연성과 인과 관계가 상실된 이 생뚱맞은 이야기들은 모두 마지막 반전을 위해 예비된 것들이다. ‘식스 센스’ 이후 소름 끼치는 반전 없인 스릴러 영화의 명함도 못 내밀게 되면서, 관객이 예상치 못한 최후의 반전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강박이 됐다.
그러나 관객의 예상을 빗나갔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훌륭한 반전인 것은 아니다. 파편들을 하나로 꿰맞췄을 때 ‘지리릿’ 하는 전율이 느껴질 정도의 설득력을 갖추는 게 관건일진대, 짜맞춘 듯한 ‘럭키 넘버 슬레븐’(Lucky Number Slevin)의 반전은 영화의 불친절함을 상쇄하기엔 역부족이다.
토막토막 파편화 한 이야기, 시간을 거스르는 역구성, 여러 사람을 초점 화자 삼아 이야기를 전개하는 다층적 구조, 개런티만 모아도 영화 몇 편은 찍었을 초호화 캐스팅, 거기에다 그들의 복잡한 인물 관계 등은 결말에 대한 궁금증을 고조시키지만, 막상 ‘럭키 넘버 슬레븐’이란 키워드에 감춰진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영화가 이토록 파편화되고 난삽했던 게 고작 그 정도의 반전 때문이었다니 다소 억울한 마음이 든다.
오히려 이 영화의 미덕은 중력 관성 반작용 등 뉴턴의 모든 법칙을 무시하며 종횡으로 질주하는 카메라 워크와 시공간을 재구성하는 담대한 편집이 빚어낸 영상 미학에 있다. 영화가 편집의 예술이라는 말을 환기시키듯, 총천연색 고급 잡지를 동영상으로 돌려보는 것 같은 화면이 스타일리시의 극점을 선보이며 관객을 현혹한다. ‘동양의 특이한 인형’에서 살아 움직이는 당대인으로 재탄생한 루시 리우의 사랑스러운 매력도 빼놓을 수 없는 이 영화의 즐거움이다.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2004), ‘케미컬 제너레이션’(1998) 등을 만든 폴 맥기건 감독 작품. 22일 개봉. 18세.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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