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사는 사람 100 명 가운데 한 명 이상은 외국인이거나 외국계 한국인이다. 1980년대까지 한국 거주 외국인들의 주류를 이뤘던 북미-유럽계 사람들이 한국어를 거의 할 줄 몰랐던 데 비해, 90년대 이후 한국에 들어온 아시아계 사람들은 대개 한국어를 할 줄 안다. 이들 가운데 적잖은 수가 한국인 배우자를 두고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노동 공간에 긴밀히 접속돼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한국은 머무는 곳이 아니라 살아가는 곳이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의 한국어 구사 능력은 적응 정도에 따라 크게 차이지지만, 한국어를 모국어로 배운 사람들의 한국어와는 꽤 다르다. 그들의 모국어가 새로 익힌 한국어에 간섭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국인이 외국어를, 이를테면 영어를 배울 때도 생기는 일이다. 예컨대 한국어 ‘결혼하다’는 자동사여서, “나와 결혼해 줘”라고 얘기해야지 “나를 결혼해 줘”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영어를 처음 배우는 한국인은 “Marry me"라는 두 낱말 사이에 ‘with’를 끼워 넣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다. 모국어인 한국어가 새로 배우기 시작한 영어에 간섭하는 것이다.
한국어는 음운 구조나 통사 구조가 주류 자연언어들과 크게 달라서, 외국인들이 쓰는 한국어에는 이들의 모국어나 (한국어가 아닌) 제 2언어가 행사하는 간섭의 흔적이 짙어 보일 수밖에 없다. 많은 자연언어가 조음점이 같은 자음들을 성대 진동 여부(유성/무성)로 변별하는 데 견주어, 한국어는 기식(氣息: aspiration)의 정도(/h/ 소리를 동반하는 정도)에 따라 이 자음들을 변별한다. 그래서 한국인들에게는 너무 쉬운 /ㄱ/ /ㅋ/ /ㄲ/, /ㄷ/ /ㅌ/ /ㄸ/, /ㅂ/ /ㅍ/ /ㅃ/, /ㅅ/ /ㅆ/의 구별이 어떤 외국인들에게는 넘지 못할 산이다.
한국어에서 유성 자음은 /ㄴ/ /ㄹ/ /ㅁ/ /ㅇ/ 같은 소리말고는 유성음(이들 네 자음과 모음) 사이의 동화를 통해서만 나타난다. 이를테면 ‘고고학’의 첫 음절과 둘째 음절은 음소 수준에서 둘 다 /ㄱ/으로 시작하지만, 음성 수준에선 각각 [k]와 [g]로 실현된다. 그래서 ‘고고학’은 [ko:gohak]으로 발음된다. 두 번째 음절의 무성 평자음 /ㄱ/이 그것을 둘러싼 두 모음(첫 음절의 /ㅗ/와 둘째 음절의 /ㅗ/)의 영향을 받아 유성음으로 변하는 것이다. 한국어 화자들은 어려서부터 이런 규칙을 깊이 내면화하고 있어서 그걸 깨닫지도 못한 채 실현하지만, 제 모국어에 이런 규칙이 없는 외국인들에게는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그들은 ‘고고학’을 흔히 ‘고코학’ ‘고꼬학’ ‘코코학’ ‘코꼬학’ 비슷하게 발음하기 쉽다.
무성 평자음이 두 유성음 사이에서 유성자음으로 변한다는 규칙은 한국어 음운 규칙 가운데 가장 간단한 것이다. 한국어는 이보다 훨씬 복잡한 음운 규칙들을 수도 없이 지니고 있다. 예컨대 ‘독립문’을 글자 그대로 [독립문]으로 읽지 않고 왜 [동님문]으로 읽어야 하는지, ‘불난리’를 쓰여진 글자대로 [불난리]로 읽지 않고 왜 [불랄리]로 읽어야 하는지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외국인들은 알 도리가 없다.
‘낯을’ ‘낮을’ ‘낫을’이라고 말할 땐 첫 음절 마지막 음소가 글자대로 [ㅊ] [ㅈ] [ㅅ]으로 실현되는데 비해, 앞의 명사들이 홀로 남아 ‘낯’ ‘낮’ ‘낫’이 되면 그 마지막 소리가 왜 하나같이 [ㄷ]으로 중화하는지도 알 길이 없다. 사실 그 정확한 이유는 대다수 한국인들도 모른다. 그들은 다만 그 규칙을 내면화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 내면화가 제 모국어에 이런 규칙이 없는 외국인들에겐 절망감이 생길 만큼 어려운 일이다. 이런 복잡한 규칙이 아니더라도, 예컨대 /ㅡ/나 /ㅢ/ 같은 모음을 지닌 자연 언어는 매우 드물어서, 외국인들이 이 소리를 제대로 익히는 일도 쉽지 않다.
통사 수준의 어려움은 이보다 훨씬 더하다. 통사 구조가 한국어와 꽤 엇비슷한 일본어 화자가 아닌 경우에, 한국어를 막 익히기 시작한 외국인들은 낱말들을 똑바른 순서로 배열하는 데 적잖은 어려움을 느낀다. 주격 조사 ‘이’ ‘가’와 보조사 ‘는’ ‘은’의 구별은 이들에게 악몽이다.
구별은커녕 많은 외국인들이 제 모국어에 없는, 이 조사라는 괴물을 아예 생략해 버린다. 그래서 한국어에 아직 충분히 동화하지 못한 어느 동남아시아 사람이 “아이 학교 가요”라고 말했을 때, 이것이 “내가 아이(의) 학교에 가요”의 뜻인지, “아이가 학교에 가요”의 뜻인지는 화용 맥락에 따라 판단할 수밖에 없다.
이런 예는 한국어를 익히기로 마음먹은 외국인들이 겪어야 할 끝도 없는 고달픔의 시작일 뿐이다. 통사 구조를 익히는 것으로 마무리될 일도 아니다. 한국인들도 더러 헷갈려 할 만큼 복잡한 경어 체계가 그 뒤에 기다리고 있다. 설이나 추석 때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와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외국인들은 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낸 예외적인 사람들이다.
한국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기로 결정하거나 아예 한국인이 되기로 뗌슛都?외국인들은 앞으로 점점 늘어날 것이다. 이들에게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이 사회 차원에서 집중적으로 제공된다면, 이들의 한국어는 점점 한국인들의 표준 한국어에 가까워질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이들이 한국어 교육 바깥에 계속 방치된다면, 그리고 이들이 모국어 집단별로 사용하는 탈규범적 한국어가 어느 수준의 실용성을 획득한다면, 한국에도 일종의 혼합어로서 피진이나 크레올 비슷한 것이 생겨날 수도 있다.
● 뒤섞인 언어 피진과 크레올
피진- 복잡한 문법 생략한 변형어
크레올- 피진을 모국어로 삼는 집단
어떤 사회적 이유로 둘 이상의 자연 언어가 뒤섞이게 되면 언어학자들이 흔히 ‘피진’, ‘크레올’ 따위로 부르는 혼종어가 생길 수 있다. 피진과 크레올은 이른바 ‘지리상의 발견’ 또는 ‘대항해’ 시대 이래 유럽어와 현지어가 섞여 태어난 ‘튀기 언어’들이다.
피진(pidgin)은 흔히 상거래에서 사용되는, 문법이 간단하고 음운이 휘어지고 어휘가 제한된 영어를 가리킨다. 피진은 18세기 중국 남부도시 광저우(廣州)에서 처음 형성됐다. 광둥성(廣東省)의 중국인 상인들과 영국인 상인들은 자신들의 모국어인 광둥어나 표준 영어 대신에 이 변형된 영어를 교역 언어로 삼았다. ‘피진’은 영어 단어 ‘비즈니스’(business)의 광둥어식 와전이다. 그러니까 피진은 본디 광둥어와 뒤섞이면서 간략해진 영어를 가리켰고, 지금도 그냥 피진이라 하면 피진 영어(pidgin English)를 가리키는 일이 예사다.
그러나 이것은 좁은 의미의 피진이다. 이런 식으로 간략해진 혼종 언어는 그 뒤 다른 식민국 언어와 현지 언어 사이에서도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내 피진은 ‘영어와 광둥어의 혼종어’라는 본래의 뜻을 벗어나 간략한 혼종어 일반을 가리키게 됐다. 특히 태평양의 멜라네시아 지역에는 유럽어(영어만이 아니라 독일어, 포르투갈어 등) 요소와 말레이어, 멜라네시아어파의 여러 언어 요소들이 뒤섞여 갖가지 피진이 생겼다. 아프리카에서도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영어, 포르투갈어 등 유럽어가 현지어 요소와 섞여 피진을 낳았다.
피진은 서로 다른 언어 배경을 지닌 화자들이 ‘교통 언어’, ‘접촉 언어’로 사용하는 혼성어일 뿐 그것 자체를 모국어로 삼는 화자는 없다. 18세기 중국 광저우에서 처음 피진을 사용한 영국인들과 중국인들에게 영어와 광둥어라는 모국어가 따로 있었듯, 그 뒤에 생긴 피진의 화자들도 다 제 모국어를 따로 지니고 있었다. 그러니까 피진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 누구에게도 제 1언어가 아니다. 그것은 그저 임시 변통의 언어일 뿐이고, 따라서 대개 입말 형태로만 존재할 뿐 기록되지 않는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 이런 피진을 제 1언어로, 다시 말해 모국어로 삼는 화자 집단이 생겨날 수 있다. 그럴 경우엔 이 혼종어를 피진이 아니라 크레올(creole)이라고 부른다. 크레올은 피진과 달리 견고한 문법 구조를 지녔고, 그래서 흔히 서기 언어로도 사용된다. 크레올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프랑스어에 바탕을 둔 카리브해 일대의 크레올이다. 이 지역의 크레올은 문학 언어로서도 버젓하다. 오늘날 전세계에는 수십종의 크레올이 존재한다.
프랑스어 ‘크레올’은 16세기말 스페인어 ‘크리오요’에서 차용됐고, 이 스페인어 단어의 기원은 포르투갈어에 있다. 이 말은 본디 브라질의 흑인 혼혈인을 가리키다가,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태어난 유럽계(주로 스페인계) 백인을 가리키게 되었다. 지역에 따라서는 그 반대로 아메리카 식민지의 유색인을 가리키기도 했다. 아무튼 크레올이라는 말은 처음에 언어를 가리킨 것이 아니라 사람을 가리켰다. 요즘도 이런 용법이 남아 있어서, 미국에서는 루이지애나의 프랑스-스페인계 백인이나 이들과 흑인 사이의 혼혈인을 크레올이라 부른다.
크레올이라는 말이 언어와 관련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말이다. 당초 세네갈 일부 지역에서 쓰이던 포르투갈어 방언을 가리켰던 이 말은 그 뒤 포르투갈어만이 아니라 프랑스어, 영어, 네덜란드어, 스페인어 등의 식민지 방언을 두루 가리키게 되었고, 더 나아가 오늘날 우리가 ‘피진’이라고 부르는, 서로 다른 모국어 화자 사이에 통용되는 혼성 교통어를 가리키기도 했다. 그러니까 피진과 크레올의 구분은 오래도록 모호했던 셈이다. 크레올이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바의 언어학적 의미를 얻게 된 것은 20세기 들어서다.
객원 논설 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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