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있을까.
2001년 9ㆍ11 테러가 발생하자 미국은 한달 뒤인 10월 아프가니스탄과 2003년 3월 이라크를 공격하면서 ‘테러와의 전쟁’이란 이름을 내걸었다.
이 테러와의 전쟁 5년을 맞아 미 외교안보 전문지 ‘포린 폴리시’가 최신호(7ㆍ8월호)에서테러리즘 전반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에는 국무장관, 국가안보보좌관, 군 사령관, 정보책임자 등을 지낸 전직 관료와 학계 언론계의 외교정책 전문가 등 100명이 참여했다.
이들의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평가는 정치성향과 무관하게 놀라울 만치 일치했다. 무려 84%가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있다고 응답했고, 86%는 전쟁 이후 미국이 오히려 위험해졌다고 지적했다. 장차 10년 내에 9ㆍ11에 버금가는 테러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한 전문가는 10명 중 8명을 넘었다. 반면 전쟁에서 승리하고 있다거나 전쟁으로 안전해졌다는 반응은 13~10%에 머물렀다.
미 외교협회(CFR)의 레슬리 겔브 명예회장은 “전문가들이 외교정책에 대해 이처럼 일치된 의견을 낸 적이 없다”고 놀라워 했다. 그는 “부시 정부의 군사력에 의존하는 비현실적 판단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우방과의 관계정립, 북한ㆍ이란 문제 대응, 대량살상무기 통제 등에 대한 잇단 실패도 도마에 올랐다.
글로벌 테러범 배출 국가는 미국의 우방인 사우디아라비아(62%) 이집트(13%) 파키스탄(11%)이란 평가가 절대 다수였다. 이란과 이라크를 지목한 이는 1%에 불과했다. 또 개혁을 했다는 정보기구에 대해 언론인 빌 거츠는 “국가정보국 신설 등 정보분야 개혁은 새 직제를 만드는 차원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다.
프린스턴대 우드로 윌슨 스쿨의 마리 슬로터 원장은 테러와의 전쟁 패인을 근본치유가 아닌 대증요법 때문이라며 부시정권을 겨냥했다.
그는 “이 시대 최대 적을 공산주의에서 이슬람 근본주의로 대체시킨 우리의 주장이 알 카에다식 세계관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미국인들이 지쳐가는 테러와의 전쟁은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제2의 9ㆍ11이 발생할 시점에 대해 전문가 79%는 2011년까지를, 84%는 2016년까지를 꼽았다.
전문가들은 이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이념, 명분에서 먼저 이겨야 한다며 비군사적인 부문의 역할 확대를 강조했다. 지금처럼 군사력을 앞세운 미국의 독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 위협요인 분석에서 지금과는 다른 창의적인 관점에 설 것을 요청했는데 이런 문제의식은 전문가의 14%가 미국의 최대 위협요인이 부시 정부 정책이란 지적에서도 알 수 있다. 알 카에다 같은 테러리즘이 최대 위협이란 대답은 32%에 그쳤다.
이태규 기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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