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열린우리당이 내년도 예산을 협의하면서 당초 공적자금 상환용으로 책정된 3조 2,000억원을 사회간접자본 확충과 양극화 해소 등 경제활성화 재원으로 활용키로 했다고 한다. 5ㆍ31 지방선거에서 표출된 민심의 요체가 서민경제 부흥과 일자리 창출인 만큼 이 부문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사업에 동원 가능한 돈을 모두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선거민심을 받들어 중산ㆍ서민층의 살림살이를 적극적으로 돌보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반길 일이다. 청와대 등 권력 주변에서는 아직도 "인위적인 경기부양은 없다"는 헛소리가 나오지만, 교조적 거대 담론을 즐기며 근거없는 낙관론만 전파한 결과 서민들의 삶은 더 궁핍해졌다는 반성은 이 시기에 꼭 필요하다. 그러나 다급하다고 일의 순서를 뒤집고 편법에 기대면 후환을 낳기 마련이다.
2002년 마련된 공적자금 상환계획에 따르면 재정부담 몫은 49조원이고, 2027년까지 매년 2조원 안팎씩 충당하게 돼 있다. 하지만 재정여건을 이유로 곶감 빼먹듯 이를 전용한 까닭에 2005년까지 3년간 집행된 규모는 4조원을 크게 밑돈다. 그래서 올해 3조원에 이어 내년엔 3조원 이상을 책정한 것인데 이를 통째로 전용하겠다는 것이다.
GDP의 30%를 넘는 250조원의 나라 빚을 외면하고 급한 불부터 끄자는 발상은 재정을 다루는 관료나 정치인의 인식이 가볍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문제는 편의주의와 무원칙으로 풀 일이 아니다. 경제 활성화가 화급할수록 예산배분 구조를 전면 재정비해 선택과 집중의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빚 얻어 빚을 막는 구태의연한 자세로는 다음 세대에 부담을 전가해 장기적 성장잠재력도 해치게 된다.
정부는 앞으로 공적자금으로 회생한 대우계열사 등을 팔아 공적자금 상환예산을 마련하겠다고 말하지만 작금의 안이한 태도를 보면 그것도 공수표가 될 확률이 높다. 밥 먹듯 추경예산을 편성하고 예산전용을 일삼는 등 재정규율이 흐트러진 정부를 위해 세금을 더 낼 국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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